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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도로까지 내려온 시뻘건 불길, 뜬눈으로 밤을 새다

중앙일보 2020.04.29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8)

 
올해 들어 전쟁 같은 큰일을 연거푸 겪는다.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순간의 재난과 아픈 이야기를 영화 보듯 상상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먼 뉴스로만 듣던 재난이 내 앞에 닥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한 달 동안 대문을 걸어 잠그고 감옥 아닌 집콕 생활을 하며, 재난이란 내가 원해서가 아닌 급작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재난으로 인해 일할 수 없던 그 시간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하는 불안으로 공황상태가 되었다. 가장 심란하고 절박한 생각에 처한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서 받은 사랑으로 인해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기도 한 시간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님은 두 달에 걸쳐 쉬는 시간을 걱정하지 말라며 기본 생활비를 보장해 주었다. 행여 굶을까 봐 밥 챙겨 먹으라고 현금을 보내준 친구, 먹거리 박스를 몇 번씩이나 대문 밑에 밀어놓고 간 이웃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 사는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보여주었다. 지금도 도서관은 휴관상태지만 힘든 상황도 사람으로 인해 기운을 낸다.
 
잠시 여유를 부리려 한 즈음, 엊그제는 대형 산불이 났다. 오늘로 3일째 전쟁 중이다. TV로만 보던 산불 소식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어 밤잠을 설친다. 바로 강 건너 산이라 더 무섭다. 잠을 설치고 이튿날 새벽에 방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헬기 소리에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어수선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행히 오전에 산불이 90% 이상 잡혔다는 소식에 안도하며 모여 있던 주민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각자 집으로 가려고 나오는데 조금 전까지 밝았던 하늘이 소나기가 내릴 듯 어두워 있다. 불이 다시 붙은 것이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 아래 농촌마을까지 확산되어 마을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사진 뉴스1]

경북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 아래 농촌마을까지 확산되어 마을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사진 뉴스1]

 
그날은 강풍이 종일 불었다. 잠시 후 앞산에서 연기가 확 피어오르더니 폭탄이 터진 듯 벌건 불길이 치솟는다. 순간 불이 훨훨 날아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만화에서, 영화에서만 봐오던 도깨비 같은 불의 춤은 눈 깜짝할 새. 이쪽 산을 넘나들더니 저쪽 끝까지 달려간다. 일촌광음의 시각이다. 고압선 위험 표시 풍선이 열기에 못 이겨 뻥뻥 대포소리를 내며 터지고 하늘엔 수십 대의 헬기가 돌아치니 전쟁이란 이런 거구나 싶다.
 
불은 삽시간에 앞산을 넘나들어 도로를 넘어섰다. 중앙고속도로도 통제되었다. 외곽길이 되어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집 앞 도로는 우회한 차로 인해 걸어 다닐 수가 없다. 살면서 이렇게 차가 많이 드나든 적은 처음이라며 예전에 전쟁을 경험하신 80~90대의 어르신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불안에 떠신다.
 
 
긴급 대기 방송을 들으며 무엇을 준비해서 대피해야 하나 하는 문제로 어수선하다. 소를 키우는 농가가 많아서 모두들 자식 같은 소를 두고 어찌 떠나나, 어수선한 불안감만 오간다. 돈도, 재산도, 그 무엇도 재난에 아무런 힘을 못 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이 방송에 뜨니 많은 지인이 안부를 물어온다. 어제는 안부를 물어 온 지인들에 대한 감사와 감동, 앞산 능선의 벌건 불길이 뒤엉켜 오랫동안 서성거리다 긴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밤새 소방차는 쉬지 않고 오갔다.
 
오늘 아침은 ‘꺼진 불도 다시보기’ 작전인가 보다. 소방헬기 수십 대가 집 앞 강 깊은 곳에서 물푸기를 반복한다. 다시 불길이 잡힌다. 멀리 보이는 하얀 연기에 애태우는 불안은 사라지고 다시 구경꾼이 되었다. 해 질 녘까지 헬기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바이러스, 눈에 보이는 꼭 필요한 물과 불, 모든 것이 인간의 오만으로 인해 어느 순간 화를 내면 인간은 너무 작아진다. 주말인데도 전국에서 모여든 소방직원들과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현장에서 애쓰는 공무원과 주민들에게 감사드린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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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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