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성희의 시시각각] 진보 남성의 배신

중앙일보 2020.04.29 00:41 종합 34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한국 사회 젠더 정치의 등장에 주목해 온 장덕진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전통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보수적이지만, 경제성장의 일정 단계에 이르면 젠더 간 정치 견해차가 없어지고, 그 단계를 지나면 여성이 남성보다 진보적으로 변한다. 적어도 선진산업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에서는 예외 없다.” 이번 21대 총선 결과도 비슷하다. 민주당 지지가 압도적인 20~40대에서도 여성들의 지지가 훨씬 높았다. 방송사 출구조사를 보면 20대 여성의 지지율(득표율)은 민주당 64%, 통합당 25%. 30대 여성은 민주당 64%, 통합당 27%로 민주당의 확실한 우세였다. 30대 남성도 민주당 58%, 통합당 33%로 민주당이 높았지만 30대 여성 지지율엔 미치지 못했다. 20대 남성은 민주당 48%, 통합당 41%로 격차가 좁았다. ‘이남자’(20대 남자)의 보수화와 함께 2030 여성들의 진보 성향이 민주당 압승의 큰 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결과다.
 

2030 진보 여성 지지받은 민주당
잇따른 성추행, 낮은 성 인식 실망
새로운 여성 정치 목소리 커질 듯

그런 점에서 최근 잇따른 민주당 인사들의 성추행과 추문은 충격적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근무 중 집무실에서 여직원을 성추행해 사퇴했다. 여비서 성폭행으로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이어 민주당 광역자치단체장의 두 번째 낙마다.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에서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당은 총선 기간 김남국 당선인의 ‘성 비하 방송’ 논란을 눈 감아줬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정봉주 전 의원 등을 함께 거론하며 “과거 이런 사고는 주로 보수정당 인사들이 쳐서 ‘성나라당’ ‘성누리당’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민주당 인사들이 일으킨다. 정말로 대한민국의 주류가 바뀐 모양”이라고 비꼰 게 무리가 아니다.
 
오 전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형식적 사과에 그쳤다. “5분 정도의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상대의 과민함을 수용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울컥하는 대목에선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불명예 퇴진’에 대한 회한이 읽혔다. 그는 지난해에도 한 차례 직원 성추행 의혹에 휘말렸다. 그에 앞서 젊은 여직원들에 둘러싸인 회식 사진 공개로 낡은 성인지 감수성이 도마 위에 오르는 등 ‘전력’이 화려하다. 2018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성희롱·성폭력 예방전담팀’ 구성은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제명 조치를 했지만 ‘총선 후 사퇴’라는 시점 조율과 관련해 청와대·여권 지도부의 사전 인지 의혹이 나왔다. 진상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단,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막아야 한다.
 
이번 사태는 성폭력에 진보·보수가 따로 없고, 진보 남성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함을 거듭 확인시켰다. 그들에게 진보 여성의 ‘표’는 과연 무슨 의미였을까.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여야가 지역구 여성 공천 30%를 약속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여성들은 속았다”고 썼다. 실제 지역구 여성 공천 비율은 민주당 12.7%, 통합당 11%였다. 지역구 여성 당선자는 29명으로 역대 최다지만 아직도 10% 수준이다. 말로만 성평등, 견고한 유리 천장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번 총선에서 주목했던 것은 ‘여성의 당’이었다. 득표율은 0.74%에 불과했지만 조직도, 물적 토대도 없이 출범 한 달 만에 20만 표 넘게 챙겼다. 아직은 미미한 실험 단계지만 “남녀의 정치적 차이가 영호남 차이만큼 커졌다”(장덕진)는 젠더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기성 정당이 여성들을 배신할수록, 여성 의원이나 여성 단체들조차 성폭력 등 여성 이슈를 자기 진영논리로 접근할수록 새로운 ‘여성 정치’에 대한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그리고 20대 여성들이 맨몸으로 SNS를 통해 n번방 사건을 의제화했듯이, 여성이 이끄는 정치적·사회적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양성희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