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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전] 가족

중앙일보 2020.04.29 00:19 종합 35면 지면보기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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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산을 쓴다. 우산 하나에 다 들어간다. 우산이 작거나 찢어져 아빠엄마 어깨가 젖더라도 새 우산을 펴지 않는다. 좁을수록 가까워진다. 젖을수록 가까워진다. 강한 비는 그리 오래 내리지 않는다.
 
『사람사전』은 ‘가족’을 이렇게 풀었다. 신기한 건 가족 수가 아무리 많아도, 우산이 아무리 작아도 한 우산에 다 들어간다는 것이다. 질량불변의 법칙에 저항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가족 중에 신묘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몸을 자유롭게 팽창, 수축하는 능력. 그들은 강한 비가 오면 몸을 최대한 팽창해 우산의 일부가 된다. 날이 개면 빠르게 몸을 수축해 다른 가족에게 햇볕을 양보한다. 우리는 그들을 아빠 또는 엄마라 부른다.
 
사람사전 4/29

사람사전 4/29

비 걱정 따위와 거리가 먼 넉넉한 우산도 있겠지. 그러나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아빠엄마가 미안해할 일도 아니다. 공간이 넓으면 가족 사이에 불필요한 공간이 생길 수 있다. 관계가 오히려 헐렁해질 수도 있다. 좁음이, 어려움이, 미안함이 가족의 접착력을 높인다.
 
물론 지칠 수 있다. 좁은 공간에, 강한 비에 지칠 수 있다. 신묘한 능력을 지닌 아빠엄마도 그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 주저앉고 싶어진다. 그들을 지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다시 가족이다. 이번엔 아들딸이다. 아들딸이 아빠엄마에게 어깨를 빌려준다. 아빠엄마는 그 작은 어깨에서 바위의 든든함을 느낀다. 가족은 이렇게 서로 기대며 어려운 시간을 견딘다. 강한 비는 그리 오래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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