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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시사음식] 우유를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2020.04.29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우유가 남아돈다.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흰 우유 공급이 거의 멈춰섰다. 세계 곳곳에서도 우유가 버려지고 있다. ‘문명의 자양’이었던 우유가 코로나19로 수난을 겪고 있다.
 
우유는 고대부터 신성하고 좋은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은하수(Milky Way)는 헤라 여신의 젖으로 만들어졌다. 구약성경은 20여 차례 ‘우유와 꿀이 흐르는 땅’을 칭송했다. 산업혁명으로 런던 같은 대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하얀 우유와 붉은 고기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교외에서 갓 짜낸 우유가 도시로 모이며 노동력의 원천이 됐다.
 
도시는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했다. 반면 전염병 앞에선 파괴적이었다. 생우유는 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대량 유통·소비되면서 소의 결핵균으로 인한 어린이 결핵이 발생했다. 광견병 백신 개발로 유명한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우유의 신선함을 살리면서 균을 죽이는 저온 장시간살균법(LTLT)인 ‘파스퇴르 살균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우유 한 잔. [사진 박정배]

우유 한 잔. [사진 박정배]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에서 고기와 우유는 서구화·선진화를 상징했다. 메이지 일왕은 1871년에 1200년간 이어온 육식 금지령을 풀었다. 일본에서는 고기보다 우유가 더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다. 560년 백제인 지총이 일본에 우유를 소개한 뒤 일왕은 우유를 즐겨왔다. 일왕이 마신 우유는 일본인에게 장수와 명예의 징표였다. 서양인의 커다란 체격과 함께 일본인에게 우유는 영양 가득한 문명개화의 전령사였다.
 
조선에서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우유를 먹는 문화가 시작됐다. 20세기 초 우유는 ‘위생상 비교할 것이 없는 자양물로 그 효험이 보약 등과 두드러지게 매우 다른’(황성신문 1907년 9월 22일자) 영양 음식이었다. 병자와 어린이에게 약으로 인식됐다. 가정에 우유를 배달해 먹는 문화가 일부 부유층에 정착됐다.
 
황성신문 1907년 9월 22일자. [사진 박정배]

황성신문 1907년 9월 22일자. [사진 박정배]

1950년대는 또 다른 변곡점이 됐다. 미국 정부가 4000만 파운드(약 1800t)의 탈지분유를 지원했다. 매일 분유 150만 컵이 아이들에게 제공됐다. 60년대 분식장려운동이 펼쳐지면서 빵과 우유는 학교급식과 군대식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남양유업(1964), 빙그레(1967), 매일유업(1969)이 설립되며 우유 대중화가 이뤄졌다.
 
우유를 이용한 다양한 유제품이 나오면서 2019년 1인당 원유 소비량(82.2㎏)은 쌀 소비량(59.2㎏)을 훌쩍 넘어섰다. 양만 놓고 보면 주식이 쌀에서 우유로 바뀐 셈이다. 한국인에게 우유는 문명의 자양에서 일상의 음식으로 체화됐다. 그런 우유가 코로나19 범유행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서구화·세계화·선진화 모델인 서양과 일본의 한계마저 보는 것 같다. 버려지는 우유는 문명의 자양이 바뀌는 현장이다. 거대한 변화는 음식 같은 미시의 세계에서 종종 본질을 드러낸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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