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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실 바닥엔 피” 형제복지원 끔찍한 증언 나온다

중앙일보 2020.04.29 00:06 종합 22면 지면보기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아이들 . [중앙포토]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아이들 . [중앙포토]

국내 최대의 인권유린사건의 하나로 꼽히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공공기관 공식 보고서가 처음으로 나온다.
 

부산시 진상조사 보고서 5월 발표
피해자 149명에 대해 설문조사
12년동안 불법감금·폭행·살인
수용자 80%가 납치·강제연행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진상 조사한 용역보고서를 오는 5월 말 발표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앞서 오거돈 전 부시장은 2018년 9월 16일 “부산시는 형제 복지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해 시민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부산시는 이어 진상조사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지난해 7월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24일 시의회에서 용역 최종보고회를 가진 데 이어 피해 규모와 피해지원 대책 등을 확정해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근거해 1975년부터 87년까지 12년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부산 사상구 주례동 형제복지원에서 누적 인원 3만7000명 이상을 수용해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구타, 살인·암매장이 자행됐던 사건이다. 1987년 3월 원생 1명이 구타로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면서 복지원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공식 사망자가 513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 내용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배경과 위법성,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 후속대책과 제언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피해자 실태 조사는 피해자 149명(남 143명, 여 6명)에 대한 설문조사, 이들 가운데 21명의 심층 면접으로 이뤄졌다.  
 
보고서 증언에는 “원장실 바닥에 피가 범벅돼 있었다” “원장실엔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이 30개 걸려 있고, 형사실의 취조실처럼 만들어놨다” “내 손으로 매장했는데, 지금도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나고 술 마실 때도 생각난다” “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을 당해 아이까지 출산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양이 돼버렸다” “강제 낙태를 당했다” 같은 끔찍한 내용이 들어있다.
 
피해자 149명 가운데 수용자들은 당시 15세 이하가 74.5%로 가장 많았으며, 79.7%는 납치 또는 강제 연행으로 수용됐다고 말했다. 성추행(38.3%)과 강간(24.8%) 등 성 학대가 빈번했고, 자상(67.2%) 등 평균 4.7개 신체 부위를 다쳤다. 수용 기간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보거나 직접 들은 경험은 83.2%나 되며, 3.4%는 사망자 처리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고 답했다.
 
형제복지원 실상은 『살아남은 아이』(2012, 전규찬, 한종선), 『숫자가 된 사람들』(2015, 형제복지원 구술 프로젝트)에도 나온다. 부산시 관계자는 “용역보고서는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배상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은 지지부진하다.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요구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으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으나 2019년 10월 ‘과거사정리법’이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뒤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20대 국회에서 통과가 불가능해 21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돼야 할 상황이다.
 
법무부 과사위원회가 특별법 제정과 추가 진상규명, 피해보상을 주문해 검찰이 당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비상상고하면서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박 원장은 2016년 사망했으며, 해당 복지법인은 명칭이 몇 차례 바뀐 뒤 2015년 해산하고 없다.
 
당시 박 원장은 상고심을 거쳐 원심파기까지 7차례 재판을 받았지만, 대법원이 1989년 7월 횡령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형(2년 6월)을 선고했다. 특수감금 혐의는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따른 부랑자수용이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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