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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달릴 길도 없는데"…준비 안된 '라스트 마일' 정책

중앙일보 2020.04.28 00:30 종합 26면 지면보기
라스트 마일(Last Mile). 영어사전에는 ‘사형수가 자신의 방에서 사형장까지 걸어가는 거리’라는 뜻으로 적혀있다. 생의 마지막으로 향한다는 다소 무거운 의미의 단어이지만 교통 분야로 넘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교통에서 라스트 마일은 ‘목적지까지 남은 1마일’이다. 약 1.6㎞가량 된다. 걷기에는 멀지만, 버스·전철로는 연결이 안 되고,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하기엔 여러모로 마땅치 않은 애매한 거리를 지칭한다. 이 사이를 사람들이 빠르고 편하게 이동토록 해주는 게 바로 ‘라스트 마일’ 정책이다. 이를 위한 이동 수단이 공공자전거와 공유 전동 킥보드·전기 자전거 등으로 대표되는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Last Mile Mobility)’다.
 

목적지까지 1마일 ‘라스트 마일’
자전거와 PM 활용땐 다양한 효과
국내선 인프라 부족 탓에 문제 많아
큰 그림 그리고 차근 차근 정비해야

공공자전거 하면 서울시의 따릉이가 우선 떠오른다. 서울 전역에 약 2만5000대가 있다. 보조 동력장치가 부착된 개인형 이동수단, 즉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PM)’로 부르는 공유 전동 킥보드와 전기 자전거도 전국적으로 2만~3만대가량 된다고 한다.
 
전동 킥보드의 인도 주행은 불법이다. [중앙포토]

전동 킥보드의 인도 주행은 불법이다. [중앙포토]

라스트 마일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면 대중교통과 최종 목적지 간의 간극을 상당 부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린 뒤 회사·학교 등 목적지까지 걷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공공 자전거와 PM은 꽤 편리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불편이 줄어들면 대중교통 이용률도 높아진다. 또 승용차나 택시의 도심 운행이 감소하고, 배기가스 배출도 적어진다. 여기까지는 라스트 마일 정책의 긍정적 효과다.
 
전동킥보드 민원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동킥보드 민원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럼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교통 전문가들은 “상당히 혼란스럽고 정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자전거와 PM이 차량 ·보행자와 분리돼 서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 도심에는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명묘희 도로교통공단 박사는 “자전거도로 등 인프라 확충 없이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에 대한 수요만 계속 늘어나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인도 한복판에 방치된 전기 자전거. [중앙포토]

인도 한복판에 방치된 전기 자전거. [중앙포토]

자전거와 PM은 현행법상 인도로 다니면 안 된다. 자전거는 차도나 자전거 전용도로 등을 이용해야 하고, PM은 차도로만 달려야 한다. 하지만 도심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도로에서 자전거나 PM을 타는 건 위험하다. 사고도 곧잘 난다. 이 때문에 많은 자전거와 PM이 인도로 뛰어들면서 보행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서울의 30대 회사원인 김모씨는 “인도로 달리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만으로도 신경 쓰였는데, 요즘은 전동 킥보드와 전기 자전거까지 다니는 탓에 더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경찰은 단속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PM 사고는 2017년 117건에서 이듬해에는 225건으로 급증했다. 사망자도 2년 새 8명이나 된다. 또 PM을 인도 위에 마구 세워놓는 탓에 보행자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전동킥보드 운행시 법적 의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동킥보드 운행시 법적 의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 정부는 PM 활성화를 위해 자전거 전용도로 통행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심에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겠다는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서울시에서 지난해 ‘자전거 하이웨이’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장거리 자전거 통행을 위한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다. 법이 제정되더라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란 예상이 가능한 이유다.
 
인도를 달리고 있는 따릉이. [중앙포토]

인도를 달리고 있는 따릉이. [중앙포토]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도로교통법,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등 관련 법규 및 제도에서 PM 등이 통행할 수 있는 시설과 운행규정이 명확하게 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PM에 대해 제한속도를 자전거 수준으로 묶어 통행권과 법규를 유사하게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자전거 도로 확충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이런 여건에서 사고가 계속 이어진다면 자칫 PM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에 따른 사고와 시민 불만 때문에 지난해 10월부터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을 금지했다. 공유 전동킥보드업체 수도 줄일 방침이다. 싱가포르에서도 지난해 11월 사망사고를 계기로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을 전면 금지했다. 이곳에선 전동킥보드의 자동차도로 주행도 금지된 탓에 다닐 수 있는 길은 자전거 전용도로뿐이다. 만일 국내에서 이런 정책이 엄격하게 추진되고, 단속까지 이뤄진다면 PM 업체 상당수가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시작은 이리 꼬였지만 이제라도 큰 그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응철 인천대 교수는 “인프라와 법 제도적 정비 모두 매우 부실하다”며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 합의를 이뤄내고, 관련된 준비를 체계적으로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명묘희 박사는 “PM은 담당 부처도 불명확할 정도로 방치된 측면이 있었다”며 “많은 나라가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를 허가제로 바꾸는 등 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만큼 우리도 안전과 효율을 담보할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는 우리의 도심 속 단거리 이동 행태를 크게 바꿔 놓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구난방이어선 역풍 맞기 십상이다. 정부와 지자체, 전문가 그리고 사업자가 머리를 맞대고 안전하고 편리한 신교통체계 구축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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