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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면역 여권' 준다는 유럽…이러다간 2차 대유행 온다

중앙일보 2020.04.27 17:06
항체 검사 키트 [로이터=연합뉴스]

항체 검사 키트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각국에서 대규모 항체 검사를 통한 ‘면역 여권’(immune passports) 발급을 검토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항체가 형성된 사람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직장생활과 쇼핑·여행 등 일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하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이 오히려 2차 대유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ㆍ유럽 국가들은 본격적으로 항체 검사에 나섰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에서는 “3000명에게 무작위 항체 검사를 한 결과 13.9%가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발표가 나왔다. 뉴욕주 전체 주민으로 단순 환산하면 약 270만 명에 해당하는 규모다. 실제 확진자의 10배에 달한다. 뉴욕시의 경우 양성 반응 비율이 21%로 더 높았다. 독일은 다음 달 전국 150개 지역에서 항체 검사를 실시한다. 유럽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 역시 다음 달 15만 명에 대한 전국 단위 항체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재감염 위험"

항체 검사는 혈액 샘플을 분석해 특정 항원에 대한 항체가 생겼는지 확인함으로써 코로나19 회복 여부를 판단한다. 과거 코로나19 감염 여부도 확인할 수 있어 보건당국이 그동안 파악하지 못한 코로나19 확진자를 찾아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체 인구에서 감염을 통해 면역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생겨났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이 점을 이용해 면역 증명서를 발급하겠다고 나섰다. 항체가 생긴 사람들에게라도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허가해 차츰 봉쇄를 완화하고 정상화를 앞당기겠다는 취지다. 칠레는 완치자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격리나 제한을 면제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과 이탈리아도 면역 검사 후 항체가 형성된 사람에게 증명서를 발급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의료진이 항체 검사를 위해 손가락에서 혈액을 뽑고 있다 [EPA=연합뉴스]

의료진이 항체 검사를 위해 손가락에서 혈액을 뽑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부정정적 입장을 명확히 했다. 코로나19 항체를 가져도 재감염이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WHO는 25일(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서 “코로나19에 걸렸다가 나았다고 해서 다시 감염되지 않는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항체 검사 민감도 낮아…항체와 면역 사이 관계도 불분명"

과학계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항체 검사를 통한 면역 증명서 발급에 대해 우려한다. 첫 째는 항체 검사의 정확도가 낮다는 점이다. 감염 초기에는 항체가 만들어지지 않아 아예 검출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확진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실제 덴마크 국립혈청연구소팀이 9종의 항체검사법의 성능을 평가해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medRxiv)에 올린 논문에 따르면 혈청 검사에서 감염 환자를 양성으로 판별할 확률(민감도)은 67~93%에 불과했다. 현재 국내에서 확진용으로 쓰이는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의 경우는 99%에 달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항체와 면역 사이의 관계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항체 검사 결과가 정확히 나왔다 해도, 항체가 바이러스 재감염을 막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실제 국내에서는 재양성 사례가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 방법이 다시 감염을 폭발적으로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섣불리 면역 증명서를 발급하면, 사람들의 경각심이 줄어 기존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 등이 힘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WHO는 “면역 증명서를 얻은 이들이 공중보건 권고 사항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며 "증명서가 되레 질병을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지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벨기에 바이러스학자 마크 판 란스트 교수도 BBC에 “극도로 나쁜 생각”이라며 “면역증을 위조하거나 고의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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