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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당 주인이 대기업 입사했다…중고신입 뒤엔 '3:3:4 법칙'

중앙일보 2020.04.27 05:00 경제 5면 지면보기

다른 기업 다녔던 경력사원도 신입 공채 시험 본다 

지난해 현대백화점그룹 신입사원들이 강원도 홍천군 비발디파크에서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지난해 현대백화점그룹 신입사원들이 강원도 홍천군 비발디파크에서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SK이노베이션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이준원(32ㆍ가명) 매니저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2013년 6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2년 반가량 중식당을 운영했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친 뒤 2018년 1월 이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우리 나이로는 서른. 140여명의 입사 동기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입사 이전에 쌓은 다양한  경험들이 입사 과정에서도 도움이 됐을 것이란 생각이다. 
 

[기업딥톡] ? 중고 신입들의 이유있는 약진

이 매니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하다가 군대에 다녀오는 등 입사 전에 여러 가지를 경험해본 게 지금 업무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면서 “나처럼 본격적인 입사 이전에 다른 기업에서 일을 해보거나, 개인 사업을 해보는 ‘중고신입’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중고 신입’ 전성시대다. 김 매니저처럼 대학 졸업 이후 바로 기업 등에 입사하는 이들보다 다양한 사회 경험을 마친 뒤 입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단 얘기다. 중고 신입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신입 사원의 고연령화와도 이어진다. 
 
25일 취업 포털 인크루트의 조사 결과에서도 2018년 기준 대졸 신입 사원의 평균 나이는 30.9세로 1998년(25.1세)보다 5세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구직자가 생각하는 신입 사원의 연령 상한선도 32.5세(남자 기준)가 됐다. 실제 롯데그룹의 한 유통 계열사는 최근 만 34세인 신입 사원을 선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입사원 평균연령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신입사원 평균연령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현역 입사자는 전체 신입의 30% 선

중고 신입사원들이 뜨는 건 다양한 사회ㆍ경제적 변화 덕분이다. 우선 2017년 전후로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의 영향이 크다. 출신 대학은 물론 나이와 관련한 정보를 가려놓다 보니,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입사 지원자를 걸러내는 일도 힘들어졌다. 
 
취업난이 ‘중고 신입 현상’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최근 대기업 입사 지원 경쟁률이 ‘500대 1’에 육박해, 다양한 경험이나 언변을 갖추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 관계자는 “신입 사원을 뽑고 보면, 다른 기업에 2~3년가량 다녀본 이가 합격자의 30%, 인턴 경험 등을 해본 사람은 40% 선인 반면 별다른 사회 경험 없이 기업에 바로 입사하는 경우는 30%가 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른바 '3:3:4'의 법칙이다. 
 
실제 대기업 실무전형 면접에 참여하는 부장급 직원은 “면접 과정에서 지원자들과 얘기해보면 경험치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느껴져서 막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중고 신입’을 따라잡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 “뽑는 사람 입장에서도 경력이 있다거나, 나름 우리가 아는 대기업 출신이라고 하면 안심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업무 감각 익힌 뒤 입사해 적응 유리 

나이가 찬 중고 신입사원이 많아지면서, 사무실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일단 나이가 비슷한 대리급 직원들이 신입 사원들에게 이런저런 업무 지시를 하는 데 있어 조금 더 조심하게 된다. 같은 대학을 나온 과 선배 등이 대학 후배 밑에서 신입 사원으로 입사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다. 다만, 과거와 달리 직장 문화 자체가 업무 시간에만 일하고 일과 이후에는 직원 간 사적인 관계를 덜 맺는 쪽으로 바뀌어 가면서 나이로 인한 어색한 상황은 과거보다는 크게 줄었다고 한다.  
 
중고 신입 증가에 따른 여러 장점도 있다. 일단 업무에 대한 기본 감(感)을 익히고 입사하는 만큼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외근을 나갈 때도 중고 신입 사원들이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외근이 많은 제약이나 주류 업계에서는 중고 신입을 더 반기는 편이다.  

 
중고 신입사원들 입장에서도 공채 입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10대 그룹 계열사에 2년 반 정도 다니다 지난해 SK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한 곳으로 이직한 정 모 씨는 ”3년 이하의 경력을 가지고 굳이 경력을 인정받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차라리 공채가 동기도 많고 체계적인 교육도 받을 수 있는 데다, 한꺼번에 많이 뽑으니 입사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사람 뺏기는 기업은 고민 많아져

산책하는 직장인들. [중앙포토]

산책하는 직장인들. [중앙포토]

그러나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입장에선 이런 상황이 부담스럽다. 기껏 사람을 키워놨더니, 대기업에 사람을 빼앗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서다. 대기업 역시 복잡한 속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아무래도 중고 신입사원들은 조직보다는 개인의 발전에 더 방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나이가 어느 정도 찬 다음에 입사하면 기대할 수 있는 재직 연한도 상대적으로 짧아지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 19로 중고 신입 강세 더 뚜렷해질 것" 

중고 신입을 둘러싼 복잡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더 가속화될 것이란 데에는 이견이 적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개인기’가 뛰어난 중고 신입사원들이 채용 시장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낼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익명을 원한 5대 그룹 인사 담당 임원은 “코로나 19로 기업마다 올해 채용 인원을 최소화한 것은 물론 다양한 재택근무 경험으로 인해 신규 채용에 대한 니즈 자체가 크게 줄었다”면서 “당분간 과거 수준의 채용 규모를 유지하려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고, 소수의 꼭 필요한 인재만 뽑는 상황이 지속한다면 그만큼 중고 신입사원들이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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