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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중화학공업 국가 기틀 닦은 ‘한국 경제의 설계자’

중앙일보 2020.04.27 00:05 종합 2면 지면보기

김정렴 1924~2020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회고록『아, 박정희』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구성하는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대통령 이란 큰 나무의 그늘에서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일해야 한다“고 썼다. 사진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10월 21일 김정렴 비서실장(왼쪽)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회고록『아, 박정희』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구성하는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대통령 이란 큰 나무의 그늘에서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일해야 한다“고 썼다. 사진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10월 21일 김정렴 비서실장(왼쪽)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중앙포토]

박정희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별세했다. 96세.

9년3개월 동안 박정희 근접 보좌
역대 최장수 대통령 비서실장
차지철도 함부로 못 대했던 실세
“청와대 찍힌 봉투 만들지 말라 지시”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한국 경제의 설계자로 불린다. 1924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일본 오이타(大分) 고등상업학교(현 오이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44년 한국은행의 전신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59년 재무부 이재국장을 시작으로 재무장관·상공장관을 거쳐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9년3개월의 비서실장은 역대 최장수 기록이다. 박 전 대통령과는 현대판 군신의 관계이자 개인적으로는 친구요 사상적 동지였다.
 
이승만 정부 시절 독립국가 경제의 틀을 설계하고 실천했다. 여러모로 ‘한국 경제의 제갈공명’으로 불릴 만하다. 55년 한은 조사국 시절 국제통화기금(IMF)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대에 한국의 IMF 가입을 밀어붙였다. 전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53년 단행한 1차 통화개혁의 실무를 맡았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사채동결·부가가치세 도입 같은 굵직한 경제 정책을 결단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2009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김 전 실장. [중앙포토]

2009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김 전 실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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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대통령이 큰 그림을 그렸지만, 중화학공업 중심의 성장은 고인이 설계했다”고 말했다. 장관 시절엔 수출 한국, 중화학공업 국가의 기틀을 닦았다. 한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수출에 적합하도록 특화한 경제 시스템”으로 불리게 된 것도 고인의 공이 크다. 환율과 금리까지 수출에 맞춘 수출 특화 금융 시스템을 설계했다.  
 
장기영·김학렬 부총리 이후 70년대의 주요 경제 정책은 모두 고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정책에서 인사까지 전권을 위임받았다. 대표적인 두 장면이 있다. 1972년 8·3 사채 동결이 그중 하나다. 망설이는 대통령을 설득하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남덕우 당시 재무장관조차 모르게 단행했다.
 
77년 부가가치세 도입도 그랬다. 대통령 주재 최종 경제장관회의에서 남덕우 당시 부총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관이 실시 유보를 주장했지만 마지막 발언에 나선 고인은 강행을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다수 의견을 물리치고 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가세 철폐를 앞세운 야당에 밀려 공화당이 패배하자 경제팀이 전면 경질됐고, 고인도 비서실장직에서 물러났다.
 
1968년 모리스 스탠스 미 상무장관과 악수하는 김정렴 상공부 장관(오른쪽). [중앙포토]

1968년 모리스 스탠스 미 상무장관과 악수하는 김정렴 상공부 장관(오른쪽). [중앙포토]

고인에 대한 인물평은 외유내강으로 압축된다. 사실상 ‘경제 대통령’ 역할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비서는 귀만 있고 입은 없음을 몸으로 실천했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고인은 자신을 앞세우는 걸 꺼렸고, 경제 정책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조정자 역할에 충실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아들인 김준경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 직원들에게 명함을 파지 말고 청와대 이름이 들어간 봉투도 만들지 말라고 꼬장꼬장 지시하던 분”이라며 “본래 사교적인 성품이신데도 불구하고 퇴임하신 후 보니까 친구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2018년 작고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차지철과 김재규가 비서실장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총리는 중앙일보에 연재된 회고록에 “김정렴 (비서실장 재임) 시절 차지철이 비서실장을 제치고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거나 중앙정보부장과 월권 문제로 정면 충돌하는 일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유족은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KDI 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23.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하남현·정진우 기자 yi.ju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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