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중국이 한반도에 주는 교훈
![1945년 8월 말 전시수도 충칭(重慶)에서 열린 국공담판에서 만난 장제스(왼쪽)와 마오쩌둥(오른쪽). [사진 위키피디아]](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4/26/d25721a0-444b-4953-be4f-8121e0cc9790.jpg)
1945년 8월 말 전시수도 충칭(重慶)에서 열린 국공담판에서 만난 장제스(왼쪽)와 마오쩌둥(오른쪽). [사진 위키피디아]
“약육강식의 안보환경에서 내부 역량을 집중·강화하는 데 실패한 채
전술적인 중개자 역할을 추구하는 장쉐량의 길은 위험하다.
북한은 남북 화해와 평화에 호응하는 대신 장제스의 길을 추진하려 한다.
남북으로 장제스와 장쉐량 노선의 조합이 이뤄지는 건 한국에 최악이다.”
국민당의 일인자였던 장제스는 중국 내 주도권과 통일을 우선 추진했다. 장제스에게 외세 대응은 통일 이후의 일이었다. 밀려오는 일본에 대한 대응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른바 선안내후양외(先安內後讓外)로 알려진 정책이다. 마오쩌둥과 비교해 중국 내 세력 균형에서 국민당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장정(長征)이란 이름 아래 쫓기는 공산당에 군사 공세를 강화했다. 중국 내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통제할 수 없는 외세 변수에 집착하기보다 중국 내부 통합을 앞세웠다.
힘 없이 중재 매달린 장쉐량의 실패

왕징웨이
장쉐량은 만주 군벌 장쭤린(張作霖·장작림)의 아들이다. 1928년 일본군의 열차 폭발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반(反)외세 민족주의자를 자처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협력해 일본에 맞서야 한다고 믿었다. 1936년 시안(西安)에서 장제스를 무장 납치해 국공합작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외세에 대응할 자체 역량을 갖지 못했다. 중개자에 만족했던 그의 여생은 비참했다. 평생을 가택 연금 속에 살았다. 뜻했던 국공 합작도 내전이 발발하면서 실패로 막을 내렸다.
북한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고난의 길과 선군 정책을 선택했다. 마오쩌둥의 길을 걸은 셈이다. 생존을 추구하는 ‘연약한 약자’의 모습이었다. 김정은 시기 핵·미사일 개발에 성공하면서 ‘강국’ 됐다고 자처한다. 스스로 안보를 확보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최근 일련의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의 발사 실험에 성공하면서 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은 마오쩌둥에서 점차 통일을 앞세운 장제스의 길로 전환하는 듯 보인다. 이를 위해 ▶자력갱생 ▶핵·미사일 및 대(對)한국 무력강화 ▶중·러와 협력을 추진한다는 전략 기조를 정했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과는 전략적 타협을 하는 모험은 어렵다.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의 보복은 견디기 어렵고, 미국은 신뢰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면서도 관리하고 견제하려 한다. 김정은은 결국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북한의 각종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는 방어가 불가능하다. 이는 주한 미군의 한반도 철수로 이어지기 쉽다. 북한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작전 참모부’ 역할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정책을 추진할 전망이다.
장제스 닮아가는 북, 장쉐량 닮은 한국

장쉐량
현시점에서는 북한의 무력에 ‘공포의 균형’ 역량을 갖추는 것이 평화와 남북 안정의 기본 조건이다. 무력과 공포의 대칭성을 확보하지 않은 평화는 위태롭다. 동맹의 활용은 부가 옵션이다.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밀려오는 위기에 맞서기 위해 내부 역량을 응집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처과정에서 높아진 국제 위상에 우쭐하기보다 이를 활용해 생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숙의해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에 자원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평화유지는 물론, 다가오는 국제정치의 파고와 북한의 도전을 이겨내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동상이몽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까지 친교산책을 한 뒤 회담장인 평화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4/26/e6a83c54-4589-46f9-aaaf-87c3f0aa9439.jpg)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까지 친교산책을 한 뒤 회담장인 평화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의 입장에서 최우선은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의 친미화를 반드시 방지해야 하고, 동시에 의미 있는 수준까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차선은 동아시아 분할 방안이다. 북한의 대중 종속화, 한국의 중립화, 일본의 복합외교(미·중 등거리 외교) 수립을 추동하는 것이다. 북한이 현재 노리는 한반도 주도권 확보 전략은 이러한 중국의 이해에 상응하면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차선, 중국은 차차선인 현상유지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점차 차선의 정책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한국은 이 경우 미·중 양쪽으로부터 강한 선택의 압박을 받는다. 북한에 대한 희망 섞인 평화적 공존 패러다임으로는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 개연성이 크다. 대항적 공존 정책으로 전환이 시급하다. 북한과 대항(경쟁)성을 현실로 인정하고, 내적 대응역량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힘을 바탕으로 공존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최악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주변 강대국에 대해서는 자강에 방점을 두고, ‘최소 억제전략’을 구현해야 한다. 평화공존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다.
◆김흥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시간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거쳐 현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국방개혁 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