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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지금 남편 마음 속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중앙일보 2020.04.24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73) 

1. 식물 키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남편 덕분에 우리 집엔 식물이 많은 편입니다. 물론 저 역시 집안에 싱그러운 초록이 가득한 것을 좋아하지만, 솔직히 사들이는 만큼 잘 키우지는 못합니다. 한참 흥미를 잃었다가 결혼 후 어느 날, 미세먼지에도 좋고 키우기도 쉽다기에 작은 테이블 야자 하나를 샀습니다. 한 일 년 잘 자라는 듯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유도 알 수 없이 시들어 볼품없이 말라갔죠. 방안을 초록으로 가득 채우던 화분이 시들기 시작하면 그렇게 눈에 거슬릴 수가 없습니다. 그만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남편은 회사로 화분을 들고 가더니 일 년쯤 지난 어느 봄날 싱싱하게 다시 살아난 테이블 야자를 들고 귀가했습니다.
 
식물 잘 키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지만, 식물을 잘 키우는 남편의 비밀은 관심과 기다림이었습니다. 좋아하는 환경이 하나같이 다르니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보고 지켜보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격이 급한 저는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했던 거죠.
 
식물 잘 키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지만, 식물을 잘 키우는 남편의 비밀은 관심과 기다림이었습니다. [사진 Pexels]

식물 잘 키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지만, 식물을 잘 키우는 남편의 비밀은 관심과 기다림이었습니다. [사진 Pexels]

 
2. 일요일 저녁이면 아이들의 미소로 가득한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즐겨 봅니다. 프로그램은 때때로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설치하고 이를 잘 수행하는지를 관찰합니다. 얼마 전 방송인 샘 해밍턴은 아이들의 협동심과 창의력 등을 기르고자 독에 뻥튀기를 가득 채워 달라고 부탁한 후 두 아이만 남겨두고 방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독은 밑이 깨진 독이었죠. 아이들은 한참을 어수선하게 움직이며 독이 아닌 방을 온통 뻥튀기로 가득 채웁니다. 장난하는 건지 아빠가 내주고 간 숙제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밖에서 살짝 지켜보는 아빠는 불안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기다렸고 아이들은 결국 해냅니다. 입구를 바닥으로 업어 앞뒤를 바꿔버리고는 독의 깨진 부분을 통해 뻥튀기를 채우기 시작했죠. 순간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이게 뭐 하는 것이냐고 혼내거나 나머지 과정을 알려주고 도와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해낼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3. 반려동물에 관련한 프로그램이 점점 늘고 있는 요즘, 관련한 한 프로그램에 성대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너무 짖어 고민인 예민한 반려견이 등장했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반려동물의 경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훈련에 들어가게 되면 먼저 문제의 상황을 파악해 제압하게 되죠. 긴장된 상황을 견뎌본 적이 없는 반려견은 힘들어합니다. 반려견 행동 조련 전문가 강형욱씨는 그 순간 도망치지 않고 견뎌야 하는데 반려견이 힘들어하면 주인도 함께 힘들어해 극복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반려동물이 훈련과정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지 않으면 문제 행동을 고치기 힘든 것이죠.
 
많은 순간을 지켜보면 ‘기다림’이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일 번은 잠시 멈춤 후 기다림입니다.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화로 표현하기 전에 화를 내서 후회하지 않을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은 것일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나의 의도와 생각, 감정을 분명하게 인식할 시간을 갖지 않으면 공격이나 질책, 통제와 무시의 4종 세트로 상대방에게 발사될 수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일번은 잠시 멈춤 후 기다림입니다.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화로 표현하기 전에 화를 내서 후회하지 않을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은 것일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사진 Pixabay]

부부싸움을 할 때도 일번은 잠시 멈춤 후 기다림입니다.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화로 표현하기 전에 화를 내서 후회하지 않을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은 것일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사진 Pixabay]

 
부부싸움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과했다고 일순간에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라지기는 힘들죠. 머쓱해진 상대가 본래의 정상온도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안하다는데 표정이 왜 그러냐며 다그치다가는 오히려 상황이 나빠질 수 있죠. 강도가 더 깊어진 싸움 2차전으로 돌입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경청도 기다림의 일부입니다. 내가 당장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이 있지만 상대방에게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죠. 잘 듣는 시간을 통해 상대를 생각하는 깊이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기다림은 상대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얼마 전 나태주 시인의 ‘근황’이란 시를 읽으며 남편을 떠올린 시간이 있었습니다.
 
요새
네 마음속에 살고 있는
나는 어떠니?
 
내 마음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너는 여전히
예쁘고 귀엽단다
 
남편 마음속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충분히 기다림을 유지할 만큼의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요즘 나와 배우자의 근황 어떤가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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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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