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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학교수업 들으러, 아이들은 아침9시 학원으로 간다

중앙일보 2020.04.24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가정에서 용산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신입생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통해 온라인 입학식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가정에서 용산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신입생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통해 온라인 입학식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충북의 한 중학교에 입학한 A군은 지난 16일 온라인 개학 후 매일 집으로 찾아오는 학원강사와 수업을 한다. 학교 원격수업에서 이뤄지는 내용을 학원강사에게 오프라인으로 배우는 것이다. A군은 오전 9시까지 학교 담임 교사에게 온라인 출석 체크를 한 뒤 주요 과목 수업은 재택 과외로 대신한다.
 

원격수업 빈틈 노린 사교육 기승
온라인 출석체크 한 뒤 개인교습
등교 늦어지면 학력격차 더 문제
"취약계층 학업공백 보완해 줘야"

여느 과외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 중 이해 안 된 부분을 보완하는 식이지만, A군의 개인교습은 학교 온라인 수업 전체를 강사가 가르친다. A군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까지 줄곧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온라인 수업에 적응 못 할까 걱정됐는데, 학원에 보내는 건 감염이 염려돼 집에서 하는 개인 과외를 택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국 초‧중‧고교가 원격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학교 정규수업을 대신 가르치는 신종 과외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수업의 난맥상에 불안한 부모들이 사교육으로 공교육의 공백을 메우려는 것이다. 반면 맞벌이‧조손가정의 자녀 등 일부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온라인 수업이 길어질수록 학력 격차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학교 원격수업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 광고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학교 원격수업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 광고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첫 온라인 개학을 한 지난 9일 이후 일부 학원은 학교 정규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학원으로 모으고 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에 따르면 경기도 화성시 B학원은 “학원으로 학교 가자”며 오전 8시50분부터 오후 12시까지 ‘학교 온라인 수업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안내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C학원은 온라인 수업 관련 개념 설명과 질의응답·과제해결까지 도와준다고 홍보했다. 초3 딸을 키우는 김모(38·서울 송파구)씨는 “아이가 집에서는 원격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맞벌이라 아이를 옆에서 도와줄 수도 없기 때문에 솔직히 딸을 이런 학원에 보내고 싶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개학으로 취소된 고교생 대상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를 학원에서 보라고 권유하는 업체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코로나19 우려로 등교시험 대신 드라이브스루·워킹스루 방식으로 시험지를 배부하기로 했는데, 일부 업체가 학생·부모에게 학원에서 현장 시험을 치라고 안내했다. 사걱세 조사 결과 이런 학원은 전국적으로 15곳으로 서울 9곳, 경기 3곳, 광주 2곳, 세종 1곳이었다. 서울교육청은 학원을 대상으로 지도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학원 현장 학력평가 응시생을 모집하는 사교육업체 광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학원 현장 학력평가 응시생을 모집하는 사교육업체 광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온라인 개학 후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건 부실한 원격수업이 원인이다. 입시업체 진학사가 지난 21~22일 고교생 67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절반 이상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1~2는 55.7%, 고3은 69.4%가 온라인 수업에 만족하지 못했다. 대면수업보다 집중이 안 되고, 수업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온라인 개학으로 교육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 저학년 때 발생한 학습결손은 고학년이 돼서 메울 수 없다”며 “교육 취약계층 학생들이 학업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육은 연속성이 있어 학기 초에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1년 내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방치된 학생들을 위해 지자체가 나서서 임시 공부방을 개설하거나 긴급돌봄 참여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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