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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대선 때 코로나가 또 온다면

중앙일보 2020.04.24 00:29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고양시 일산은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에 예정된 창릉신도시 건설 때문에 민심이 들끓었다. 유은혜(고양병)·김현미(고양정) 두 현직 장관이 출마를 포기할 정도였다. 이 지역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3기 신도시 철회’ 공약으로 승부를 걸었다. 결과는 완패.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신도시 철회 공약이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로 이웃 덕양구에 출마한 통합당 후보들은 창릉신도시 건설을 전제로 한 도로 및 인프라 확충 공약을 내걸었다. 당내에서도 정리 안 된 공약이 유권자에게 먹힐 리 없다.
 

위기가 일상이 된 ‘뉴 노멀’ 시대
여권은 재정 기반으로 정책 주도
야당은 어떤 대안 보여줄 것인가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했던가. 보수 참패의 이유는 다양하게 꼽힌다. 이념 지형의 변화, 코로나 바람, 공감 능력 결여 등등. 하지만 결국은 ‘보수 야당의 능력 부재’로 귀결된다. 남 탓, 주변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3기 신도시 혼선은 이런 무능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부동산 문제는 현 정부의 대표적 실정으로 꼽히지만, 통합당의 대안은 그저 ‘일단 반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도심 재건축·재개발 확대 등 시장 논리로 해결하자는 답이 틀렸다곤 할 수 없지만, 면피에 가깝다. 집 문제로 좌절하는 청년과 서민에게는 ‘그냥 기다려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현 정부가 의욕만 앞세워 실책을 거듭하는 사이 보수 야당은 뭘 했나. 대안을 찾기보다는 추수 끝난 논에 떨어진 이삭을 줍듯 반사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했다. 알맹이를 못 채운 쭉정이 심판론은 훅 불어온 코로나 바람에 한순간 날아가 버렸다. 국민은 묻는다. “당신들 계획은 뭐냐.”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답이다. 답이 없으면 위안이라도.
 
코로나 조기 종식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짙어지고 있다. 짧아도 내년 말까지 갈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가 많다. 백신 조기 개발이 힘들거니와, 개발돼도 대다수 국민이 접종하기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겨울은 물론 대선을 앞둔 내년 겨울에도 코로나가 재연될 공산이 크다는 이야기다. 생각만 해도 우울하지만, 감염병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긴장은 상당 기간 상수(常數)가 될 것이다.
 
그때도 코로나는 여권의 우군이 될까. 경제 상황과 정부 대응을 두고 봐야겠지만, 여권은 이번 총선의 경험을 잊지 않을 것이다. 곳간 열쇠에서 나오는 정책 주도권은 분명 유리한 무기임에 틀림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보수는 ‘선심성’ ‘돈 선거’라며 비난만 해댈 건가. 이번 총선은 우리의 삶이 흔들릴 때 누가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선택한 선거였다. 일상화된 위기 속 보수 야당의 집권 플랜은 무엇인가.
 
무너진 보수 야당의 과제는 대안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올드 보이’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에서 발휘했던 정책 능력은 좁아진 보수 지형에서 길을 잃은 야당의 자산이 될 만하다. 총선에서 그는 몇 차례 내공을 보여줬다. 정부 재정 풀기 앞에 당이 허둥댈 때 “불필요한 예산을 조정해 돈을 마련하라”고 일갈한 장면이 그런 예다. ‘외부 세력에 전권을 줄 수 없다’는 당내 반발이 만만찮으나, 자존심을 가장한 기득권 지키기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코로나 경제 위기로 양극화는 심화하고, 양극화는 강력한 포퓰리즘의 토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경계하는 것은 합리적 보수의 마땅한 자세지만 정치는 그저 탄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 실현에 필요한 힘을 구하는 것이 정치다. 그 힘의 키는 중도층이 쥐고 있다. 코로나19로 훌쩍 다가온 ‘뉴노멀’ 시대, 이삭줍기로는 보수 야당의 살길은 없다. 그것도 논(민생 현장)이 아니라 고작 아스팔트와 유튜브에서 줍는 이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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