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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지푸라기라도…

중앙일보 2020.04.24 00:09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스포일러 주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짐승들’)은 돈 앞에서 짐승이 되어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많은 인물들이 여러 시간대 속에서 오가는 구조 때문에 무질서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엔 법칙이 있다. 인간은 욕망의 크기만큼 처벌받는다는 것. ‘돈 가방’이 등장하면서 시작해서 ‘돈 가방’의 퇴장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살고 싶으면 욕망을 죽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짐승들’에서 돈 가방은 여러 명의 손을 거치고, 그들은 대부분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중만(배성우)이다. 하지만 그는 목숨 대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 삶의 터전이 깡그리 불에 타 없어진 것이다. 이때 노모 순자(윤여정)가 다가와 말한다.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게 되는 법이야.” 치매를 앓고 있는 순자는 이 순간만큼은, 마치 그 모든 것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현자처럼 말한다. 그리고 이때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영화는, 이 순간만큼은 피사체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세상을, 불타고 있는 중만의 집을 바라본다.
 
그영화 이장면용 사진

그영화 이장면용 사진

그렇다면 돈 가방도 함께 불타버린 것일까? 그럴 리가. 누군가는 자신이 최종 승자인 줄 알고 그 와중에 돈 가방을 챙긴다. 여기서 ‘짐승들’은 작은 반전을 보여준다. 진짜 최종 승자는 영화 내내 가장 욕망이 없어 보였던 인물이 된다는 것. 그는 돈 가방을 들고 유유히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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