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학개미’ 유가 20배 상승 베팅까지…금감원, 투자 경보

중앙일보 2020.04.24 00:05 종합 2면 지면보기
23일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 탱크의 부유식 지붕(플로팅 루프)이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플로팅 루프는 저장된 원유의 높이에 맞춰 오르내려 저장량을 짐작할 수 있다. [연합뉴스]

23일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 탱크의 부유식 지붕(플로팅 루프)이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플로팅 루프는 저장된 원유의 높이에 맞춰 오르내려 저장량을 짐작할 수 있다. [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개인투자자의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 열풍에 잇따라 경고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23일 미국 서부텍사스유(WTI)와 연계한 파생금융상품 투자에 최고 등급(위험)의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지난 9일에 이어 2주 만에 두 번째 소비자경보 발령이다.  
 

국제유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원유 금융상품 투자에 몰려들어
당국, 전액손실 위험상품 거래정지
금융위 “고위험, 냉정한 판단을”

2012년 금감원이 소비자경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위험 등급의 경보는 처음이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도 23일 “아직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큰데도 고위험·고수익 금융상품 판매가 다시 증가할 조짐”이라며 “투자자들은 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냉정하게 투자판단을 해달라”고 말했다.
 
개미투자 급증한 원유 ETN

개미투자 급증한 원유 ETN

문제가 된 투자상품은 WTI 선물과 연계한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다. WTI 같은 원유 상품은 실물을 거래하기보다는 미래의 일정한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계약(선물 거래)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국내 개인투자자가 해외 금융시장에서 직접 원유 선물을 거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이유로 원유 ETN과 ETF란 파생상품이 나왔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 원유를 사고파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국내 증권사가 만든 상품이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있기 때문에 증권사 계좌만 있으면 누구나 수천원 정도의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다.
 
증시 투자자 예탁금 추이

증시 투자자 예탁금 추이

원유 ETN의 기준 가치(실시간 지표가치)는 국제 유가를 기준으로 매긴다. ETN의 기준 가치가 1000원일 때 한국거래소 시장에서 주당 1000원 정도에 거래된다면 별문제가 없다. 만일 시장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지면 투자자는 ‘바가지’를 쓸 위험이 커진다. 기준 가치와 시장 가격의 차이를 괴리율이라고 하는데 지난 22일 이 비율이 2000%를 넘는 사례(삼성 레버리지 WTI 선물 ETN)도 나왔다. 앞으로 국제 유가가 2000% 이상 오르지 않는다면 투자자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거래소는 해당 ETN 투자자에게 전액 손실 가능성을 경고하며 거래를 정지시켰다.
 
금감원에 따르면 삼성·신한·NH·미래에셋대우 등 4개 증권사가 발행한 ‘레버리지 원유 선물 ETN’의 개인 순매수 금액은 지난 1월 278억원에서 지난달 3800억원으로 급증했다. 레버리지 ETN은 국제 원유 가격이 오르면 곱하기 2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유가가 내리면 손실도 두 배로 커질 수 있다. 최근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ETN의 투자 위험도 급격히 커졌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에도 “주가 급락 뒤엔 기회가 온다”고 판단한 개인투자자들은 증시로 몰리고 있다. 이른바 ‘동학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의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부터 지난 22일까지 26조원 넘는 주식(코스피·코스닥 합계)을 사들였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주변 자금은 143조5400억원(지난 21일 기준)으로 역대 최대였다. 4개월 전과 비교하면 24.7% 늘었다. 투자자 예탁금과 파생상품 거래 예수금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초저금리로 은행 예·적금에서 빠져나온 돈이 증시로 옮겨온 데다 부동산 시장까지 불안해지면서 ‘머니 무브(자금 이동)’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효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는 개인 자금의 증시 유입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황의영·성지원 기자 apex@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