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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법인 세워 딸에게 ‘강남 집’ 사준 병원장

중앙일보 2020.04.24 00:03 경제 5면 지면보기
지방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 그는 최근 자녀 명의의 부동산 법인을 설립했다. 매달 병원 광고 대행료 명목으로 이 법인에 수십억 원의 광고료도 지급했다. 그러나 이 돈은 한 푼도 광고 업무에 쓰이지 않았다. 대신 20억원대 강남 아파트를 사는 데 썼다. A씨가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하는 데 부동산 법인을 이용한 것이다.
 

국세청 법인대표 등 27명 세무조사
“차명계좌 등 탈세혐의 검찰 고발”

부동산 법인 탈세2.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부동산 법인 탈세2.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병원장 B씨도 다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를 높게 매긴 정부 대책이 발표되자 부동산 법인을 설립했다. 그는 배우자 명의로 2채의 아파트를 소유했지만, ‘1세대 1주택자’로 둔갑했다. B씨는 우선 아파트 1채를 이 법인에 시세보다 싸게 팔았다. 양도차익을 남기지 않고 팔다 보니 납부할 양도세도 없었다. 두 달 뒤 남은 1채를 팔면서는 1세대 1주택자로 신고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택 거래가 얼어붙고 있지만, 부동산 탈세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다주택자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자 부동산 법인을 설립하는 형태로 탈세를 시도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국세청은 23일 국내 부동산 법인 6754곳을 전수 검증한 뒤 탈세 혐의가 명백한 27명을 추려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부동산 법인 탈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부동산 법인 탈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세청이 적발한 부동산 법인은 대부분 1인 주주이거나 4인 이하 가족법인이었다. 탈세 혐의자들은 자녀에게 고가 아파트를 증여한 뒤 증여세를 회피하거나, 다주택자 중과세 규제를 피하려고 법인 설립을 택했다.
 
다주택자가 부동산 법인을 세워 아파트를 법인에 소유 자산으로 넘기면 종합부동산세·양도세 등을 회피할 수 있다. 가령 다주택자가 다수 부동산 법인을 세운 뒤 법인마다 1채씩 주택을 나눠 놓으면, ‘1세대 1주택자’로 둔갑한다. 다주택자에겐 무거운 세율(최대 3.2%)을 매기는 종부세를 1주택자에 붙는 낮은 세율(최저 0.5%)만큼만 낼 수 있게 된다. 법인은 주택을 팔고 난 뒤 납부하는 양도세도 내지 않는다.
 
부동산 법인이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으면서 법인에 파는 아파트 거래도 급증했다. 올해 1분기 개인이 법인에 판 아파트는 1만3142개로 지난해 거래(1만7893건)의 73%에 달했다.  
 
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세무조사는 부동산 법인 대표와 가족은 물론 부동산 구매에 회사 자금을 편법으로 유용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며 “차명계좌를 이용하거나 이면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탈세 혐의가 드러나면 검찰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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