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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해준 게 뭐냐" 삐친 伊국민들 "이탈렉시트 찬성" 40%

중앙일보 2020.04.23 08:00
방독면을 착용한 여성을 그린 벽화 앞을 지나는 이탈리아 남성. [EPA=연합뉴스]

방독면을 착용한 여성을 그린 벽화 앞을 지나는 이탈리아 남성. [EPA=연합뉴스]

“다음은 이탈렉시트?”

이탈리아 현지 언론이 '브렉시트'에 이은 '이탈렉시트(Italexit·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을 제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겪은 이탈리아에서 유럽연합(EU) 탈퇴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컨설팅업체 테크네(tecne)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EU 탈퇴에 찬성한다”는 답변이 49%에 달했다. 지난 3월 말 진행한 조사에서도 ‘EU회원국으로 남아있는 게 불리하냐’는 질문에 67%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2018년 말 같은 조사 때보다 20%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탈EU 분위기는 친EU 성향 정치인 사이에서도 감지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친EU 성향인 자유주의행동당은 최근 당원들로부터 “EU가 해준 게 뭐가 있느냐. 필요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EU 탈퇴를 주장해 온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도 “EU 탈퇴가 도움된다면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작별하자”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치인들 마저 EU 탈퇴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이다.
 

“EU, 해준 게 뭐 있냐”

이탈렉시트 분위기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확산했다. 코로나19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퍼지던 2월 말부터다. 이탈리아 인접 국가들이 이탈리아를 대상으로 국경 폐쇄·입국 제한 등을 시도한 게 발단이 됐다. 일각에선 EU가 이탈리아를 고립시키면 이탈리아 내 반EU 감정을 부추겨 이탈렉시트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후 EU가 이탈리아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며 반EU 감정이 거세졌다. 이탈리아 정부가 의료물품 지원을 호소했지만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지원 의사를 밝힌 국가는 한 곳 뿐이었다. EU를 이끄는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마스크 등 의료물품 수출금지를 고수했고 이탈리아를 지원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EPA=연합뉴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EPA=연합뉴스]

유로존의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의 미온적 대처도 불만을 샀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3월 EU 회원국에 “무엇이든 해달라”며 유로존 공동채권 발행을 제안했다. EU회원국이 공동으로 채권을 발행해 신용도가 낮은 회원국의 대출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같이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받고, 부채율이 높은 프랑스·스페인 등 남부 회원국은 동의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독일 등 재정적 여유가 있는 북부 회원국은 반대에 나섰다. 자국이 떠안을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이를 두고 EU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EU의 결속과 연대가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풀이했다. 
 
유로그룹이 약 5000억 유로(약663조원) 규모의 유로존 구제책에 합의했지만 공동채권 발행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콘테 총리는 지난 19일 한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EU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시장위기에 대처하지 않으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공동채권 발행을 촉구했다. EU는 오는 23일 정상회의에서 다시 한번 공동채권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각국의 의견이 충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U에서 받은 상처, 중국이 치료

이탈리아가 반EU 감정을 키우는 동안 중국이 EU의 빈자리를 채웠다. 중국은 이탈리아의 지원요청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총 300명 규모의 의료진을 파견하고 수술용 마스크, N95 마스크, 진단 도구 등 의료물자를 보냈다. 보건 당국도 나서서 코로나19 방제 정보와 경험을 전했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왼쪽)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탈리아에 의료 물자 지원을 약속했다. [AFP=연합뉴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왼쪽)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탈리아에 의료 물자 지원을 약속했다. [AFP=연합뉴스]

국제 사회는 중국의 태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이 바이러스가 뒤늦게 확산한 외국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방역 정보를 공유하고 의료 지원을 약속하며 ‘책임자’에서 ‘해결사’로 이미지 전환을 노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민은 중국에 호의적 평가를 보내고 있다. 더 유러피안 포스트가 3월20일부터 4월12일까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호국·적국 인식’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응답자 52% 선택을 받아 ‘우호국’ 1위에 올랐다. 반면 EU회원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45%, 38%를 받아 ‘적국’ 1·2위에 꼽혔다. 중국은 ‘친구’, 독일·프랑스는 ‘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EU는 이탈렉시트 우려가 커지자 이탈리아를 회유하는 분위기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6일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탈리아를 지원하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코로나19가 유럽에서 확산하기 시작했을 때 준비가 돼어있지 않아 각 회원국이 이탈리아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전의 분열과 논쟁, 비난은 잊자”며 단합을 강조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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