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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선] 보수의 도전 497세대

중앙일보 2020.04.23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마스크 대란에 지친 시민들의 집단 스트레스가 정점에 올랐을 무렵 만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당장 투표를 하면 몰라도 4월 총선은 결국 여당이 이길 것이다. 여당은 학생회장 출신 등 선거의 달인들이 모인 곳인데, 야당은 시험 또는 스펙의 달인들뿐 아닌가.”학생운동을 함께 한 여권 586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운 친구의 희망사항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압승과 참패 가른 8.4%p 격차
여권 지지율 70%인 40대 몰표
성장 배경상 공정·평화 지향 강해
‘젊은 보수’ 변화는 40대 포용부터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는 국내 코로나 사태가 ‘신천지 +α’정도로 수습되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한국식 대처가 긍정 평가를 받는 것이다.”한 일간지의 칼럼에서 본 여권 핵심인사의 말이다. 발언 시점은 국내에 하루 확진자가 600명씩 쏟아져 나오고 미국은 누적 확진자가 100여명에 지나지 않던 3월 3일이었다. 누구도 코로나가 여당에 호재라 생각지 않던 무렵, 이 선거의 달인은 두어 수 앞을 내다보며 총선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절대평가가 상대평가로 전환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응은 ‘잘못한다’에서 ‘잘한다’로 급전환됐고  4·15 총선은 여권 인사가 그린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장강(長江)적벽에 동남풍이 분 게 제갈량의 기도가 신통력을 발휘해서가 아니듯 여당의 압승도 그저 굴러 들어온 게 아니다. 제갈량이 천문기상과 지형을 관찰하고 피아의 전력을 분석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전투에 임한 것처럼 여당은 코로나 사태의 향방을 정확히 예측하고 선거 전략과 결부시켰다. 이릍 토대로 선거 기간에 내세울 이슈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구분짓고 선거를 자기 페이스대로 끌고 갔다. 대한민국 여권으로 공항에서 쫓겨날 때 들끓던 불만을 단군 이래 가장 국격이 가장 높아졌다는 자부심으로 전환시켰다. 과장 홍보로 역효과가 나지 않도록 하는 데까지 여권은 신경을 썼다. 인터넷을 도배하던 친문 댓글부대가 총선 기간 싹 사라진 것도 알고보니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반면 야당은  공천잡음, 막말논란과 그 수습책을 둘러싼 혼선 등으로 스스로 지는 길로 향해 갔다.
 
하지만 이런 현상적 원인만으로 선거결과를 전부 설명할 순 없다. 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도 보수 나름대로 결집한 건 높아진 투표율로 증명이 된다. 이번 총선의 지역구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8.4% 포인트의 차이가 압승과 참패의 갈림길이었다. 문제는 41.5%가 보수정당이 얻을 수 있는 사실상의 최대치란 점에 있다. 8.4% 포인트의 격차는 좀처럼 뛰어넘기 힘든 벽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와 여권의 가장 강고한 지지층은 40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예외없이 입증된 사실이다. 총선 코앞인 지난 6∼7일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평가 조사에서 ‘잘하고 있다’는 57%, ‘못하고 있다’는 35%였다. 3040세대만 보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70%였는데 그 중에서도 30대보다 40대가 더 여권지지 비율이 높다. 직업군으로 보면 사무직 근로자의 71%가 대통령 지지세력이었다. 통념상 안정 지향적이어야 할 40대 화이트컬러 층이 투표장에서는 여권에 몰표를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 비율로 볼 때 40대(19%)의 표가 7:3으로 나뉘면  8%포인트에 가까운 격차가 난다.
 
40대, 즉 497세대는 대한민국이 절대빈곤을 극복한 뒤인 1970년대에 태어나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진 다음인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당시 한국 사회는 이념의 백화제방을 맞았다. 바깥 세계는 냉전종식과 함께 이념 대결을 끝냈지만 막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한국에선 그동안 억눌려져 있던 진보 이념과 역사관이 지식 사회의 주류로 올라섰다. 전교조 교육을 받은 40대 초중반은 반공교육의 영향에서 자유롭다. 그들이 사회 초년병일 무렵 터진 IMF 위기도 497 세대의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미쳤다. 성장보다 분배와 공정에, 안보보다 평화에 더 끌리는 이유를 그런 성장배경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그들이 점점 더 우리 사회의 중추로 올라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40대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40대 리더를 키우지 못하면 보수야당에 미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변화보다 안정을 찾게 된다. 중년의 문턱에 선 40대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한국의 정치지형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대한민국이 방향을 잃고 제자리를 맴돌거나 추락하지 않으려면 약해질대로 약해진 오른쪽 날개를 튼튼히 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가 젊어져야 한다. 보수가 가장 먼저 포용해야 할 대상이 바로 497세대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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