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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푸는 것 못지 않게 친기업·친시장 시그널도 줘야”

중앙일보 2020.04.23 00:03 경제 3면 지면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승객이 급감했다.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승객이 급감했다.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기업들의 공포감을 덜어달라.”
 

재계·학계, 5차 비상경제대책 반응
‘매출 제로’ 면세점 대책은 또 빠져
정유, 유류세 조정 절실한데 무소식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5차 비상경제회의의 결과물에 재계·학계에선 이런 목소리가 나왔다. 속내는 복잡하다. 대규모 재정투입을 통한 기간산업 부양과 대규모 유동성 지원, 그리고 일자리 창출 노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부 지원의 효율성에 대해선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재정정책 전문가인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돈을 푸는 용처를 조금 더 세밀히 구분하고, 그에 따른 유동성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시적인 자금 문제를 겪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지, 지금처럼 어려움을 겪는 기업 전반에 대한 지원은 ‘돈 뿌리기’ 외에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또 “구조조정을 하겠다거나 혁신 성장이 가능한 분야에 집중 투자를 하겠다는 얘기는 없다”며 “뼈아픈 구조조정과 혁신이 없으면 고통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업종별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직·간접 정부 지원을 기대하던 면세점 업계는 허탈해한다. 매출이 거의 없어진 면세점 업계에 대한 대책이 이번에도 빠졌기 때문이다.  
 
올 1분기에만 사별로 조(兆) 단위 적자가 예상되는 정유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는 정유업계를 위해 관세 및 각종 부과금 유예, 비축 시설 대여료 한시 인하, 석유관리원 품질검사 수수로 납부 유예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로 정유 4사가 실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연간 200억원 안팎이다. 익명을 원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휘발유의 경우 제품 가격의 60%가량이 세금인데, 당분간만이라도 석유 제품에 중과되는 유류세를 실질적으로 손보는 게 필요했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 등 7개 업종에 대해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 조성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인공호흡기로 일단 생명 연장을 했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항공업계는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만큼 기금 지원 등 앞으로의 속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지원의 전제로 내건 (임원) 보수제한과 고용유지 조건, 이익공유제 도입 등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미국처럼 보조금이 아닌 대출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고용 유지를 지원의 전제로 걸었다는 점, 기업의 핵심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은 장기적으로 우려스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항공대 허희영 교수는 “구제 금융답게 신속 입법 처리되고 상반기 중 산업계 적재적소에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익공유제란 명분은 좋지만 이런 조건을 달게 되면 기업에 대한 정부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며 “경영권에 대한 침해 이슈가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보수나 배당 제한은 경영 성과에 대한 개별 기업의 판단에 정부가 개입하겠단 의미”라며 “정부가 이들 사항에 대해 어느 수준까지 원하는 것인지 파악하느라 비상”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모처럼 지갑을 푸는 만큼 공격적인 유동성 지원 못지않게 친(親)기업·친시장 입장을 천명하는 것도 기업들의 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나빠진 실적도 걱정이지만, 지금처럼 대기업을 적으로만 여기는 분위기에선 투자고 뭐고 움직이기 부담스러운 만큼 정부가 확실하게 기업 활동을 돕겠다는 쪽으로 시그널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별도의 목소리를 내긴 힘들고, 당분간은 다른 그룹들과 보조를 맞춰서 조심스럽게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이소아·곽재민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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