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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당수 캐머런은 정치 17년차, "시스템 개혁 없는 세대교체는 무의미"

중앙일보 2020.04.22 17:51
‘세대교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 미래통합당에서 최근 자주 소환되는 이가 있다. 39세에 당 총재, 44세에 국가 지도자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다.
 
캐머런 전 총리는 39세이던 2005년 보수당 총재가 됐다. 1832년 창당해 2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보수당은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같은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해낸 관록 있는 정당이다. 하지만 1997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에  ‘418 대 165’의 참패를 당하며 몰락이 시작됐다. 이후 8년간 5명의 당수가 교체되는 등 보수당은 붕괴 직전 상태까지 내몰렸다.
 
2012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런던 엑셀 노스 아레나를 찾아 유도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2012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런던 엑셀 노스 아레나를 찾아 유도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위기 상황에서 당권을 쥔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당을 쇄신해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따뜻한 보수주의’를 내세웠다. 가정 중시, 개인의 책임, 자유기업 등 보수당의 원칙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소외된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5년 뒤인 2010년, 캐머런의 보수당은 세계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노동당을 누르고 13년 만에 재집권했다.
 
통합당이 총선 참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선 캐머런 전 총리 같은 젊고 참신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유력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궁지에 몰리면 누군가 나타난다.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혁신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 튀어나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정치 현실에서 ‘30대 캐머런’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보수 정당의 이념과 가치를 계승할 인재풀이 엷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엄경영 시대연구소장은 “세대교체 이전에 젊은 인재들에게 통합당의 가치와 비전을 심어주고, 정치 경험을 쌓을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여의도연구원은 싱크탱크의 기능을 상실한 채 여론조사 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을 단순히 젊다는 이유로 영입한다면 미숙한 정치력 때문에 오히려 통합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늘어날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젊은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캐머런 전 총리가 보수당 당수가 될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지만, 이미 17년 차 정치인이었다. 그는 1988년 대학을 졸업하며 보수당의 싱크탱크격인 CRD(Conservative Research Department)에 들어갔다. 이후 유력 정치인들의 보좌관 등으로 이력을 다진 뒤 2001년 처음으로 하원의원 배지를 달았다. 보수당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혜성같이 등장한 슈퍼맨이 아닌, 시스템이 길러낸 정치인이라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2월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국을 공식 방문한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2월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국을 공식 방문한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세계 주요국에서 젊은 정치 지도자가 종종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도 마찬가지다. 1986년생으로 세계 최연소 총리인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고등학생이던 2003년, 당시 마르쿠스 피글 빈 제1구청장의 후원으로 국민당의 청년조직인 청년당(JVP)에 입당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22살이던 2008년엔 청년당 의장에, 27세 때인 2013년엔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장관 재임 당시 해외 출장 때도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하는 등 특권을 없애 ‘유럽 보수의 아이돌’로 부상했다. 지난해 12월, 34세의 나이로 핀란드를 이끌게 된 산나 마린 총리는 27살이던 2012년에 시의원에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정치 선진국에선 청년들이 학창시절부터 정당에서 활동하고, 정당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한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상품성과 이미지를 기준으로 갑자기 내려보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원 보좌진과 당직자, 기초의회에서 이미 활약한 청년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는 등 당에서 오래 활동할 기회를 주면 자연스레 차세대 주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시스템 개혁 없는 세대교체는 일회용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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