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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브릭 7만 개,800시간의 인내… 니마코의 '플라이 하이'

중앙일보 2020.04.22 12:00

[더,오래]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9)

지난 시간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브릭 아티스트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서 작가들의 다양하고 놀라운 작품 세계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지난 2월, 브릭캠퍼스 제주에 새로운 작품 설치를 위해 방문했던 캐나다의 세계적인 브릭 아티스트 에코우 니마코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칼럼 3화에서 브릭 아트 제작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렸는데요, 브릭을 쌓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고 한 것 기억하시나요? 첫 번째는 컴퓨터로 3D 브릭 아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설계한 뒤 쌓는 방법과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죠. 네, 맞습니다. 바로 ‘상상하면서 동시에 직접 쌓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브릭 아티스트 에코우 니마코는 상상만으로 직접 브릭을 쌓아 올려 작품을 완성하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조각가이자 미술 교사인 그는 브릭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되어 10여 년 전부터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캐나다는 물론, 미주와 유럽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투어 전시를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작품에 다양한 의미와 문제의식을 담는 작가, 에코우 니마코를 만나보겠습니다.

 
브릭 아티스트 에코우 니마코 (Ekow Nimako). [사진 Ekow Nimako]

브릭 아티스트 에코우 니마코 (Ekow Nimako). [사진 Ekow Nimako]

 

브릭 아티스트보다는 아티스트로

맨 먼저 어떻게 브릭 아티스트가 되었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을 ‘브릭 아티스트’라는 말로 규정짓기보다는 브릭을 하나의 소재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4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레고를 가지고 놀아왔고 성인이 되어 뮤지션,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나서도 레고는 항상 그의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할 무렵 조각 작품에 사용할 오브제를 찾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레고를 소재로 사용하게 된 것이 브릭 아트를 접한 계기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레고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전업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엄청난 양의 레고 부품을 수집하게 되자, 그것을 바탕으로 무언가 새롭고 획기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다고 느껴졌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브릭 부품들을 다양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본격적인 브릭 아트 작품 활동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작품 'Cavalier Noir'를 작업 중인 에코우 니마코. [사진 Ekow Nimako]

자신의 작품 'Cavalier Noir'를 작업 중인 에코우 니마코. [사진 Ekow Nimako]

 

브릭 아트 작업의 모든 순간이 예술

그는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직접 브릭을 쌓아 올려 작품을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기본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 외에는 컴퓨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죠. 이러한 작업 방식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아티스트로서 조각상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경험하는 것은 도전 그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먼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사진을 여러 장 참고한 뒤에 직접 손으로 해부학적인 스케치를 그립니다. 스케치가 완성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조각상 안에 들어갈 철제 프레임을 제작하고 그 위에 바로 브릭을 쌓기 시작합니다.
 
제작하다가 실수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접착제로 고정한 부분이 잘못될 경우 그 부분 전체를 뜯어내야 할 때도 있고, 뜯어낸 부품들을 다시 사용할 수 없어서 버려야 할 때도 많죠. 엄청난 시간과 물질적인 손해가 발생하지만 그는 이런 실수도 예술적인 과정의 일부라 생각하기에 개의치 않는다고 합니다. 실수를 반복하면서 해부학적으로 더 정확하고 더 나은 작업 방식을 꾸준히 터득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방식은 그를 유년시절로 돌아가게 해줍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브릭을 가지고 놀 때 프로그램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저 원하는 것을 상상력을 통해 만들 뿐이죠. 레고로 창의적인 놀이를 계속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 작품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그가 브릭 아트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800시간의 인내 끝에 탄생하는 작품들

그의 대표 작품인 ‘플라이 하이(Fly High)’는 2015년, 캐나다 가디너 박물관에서 열린 ‘누이트 블랑쉬 토론토’ 10주년 기념 전시를 위해 설치된 작품으로 무려 7만 개가 넘는 브릭을 800시간이 넘도록 하나하나 쌓아 올려 완성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캐나다 온타리오를 대표하는 동물이자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가면올빼미를 기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가면올빼미의 생동감 넘치는 얼굴을 구현하기 위해 무려 14번이나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조립했다고 하니 그 열정과 끈기가 정말 대단하죠. 그에게 있어 브릭 아트란 창조적인 놀이를 뛰어넘어 작은 레고 조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역동적인 날갯짓을 하고 있는 이 가면올빼미처럼 말이죠.
 
브릭캠퍼스 서울에 전시중인 니마코의 작품 ‘Fly High’. [사진 브릭캠퍼스]

브릭캠퍼스 서울에 전시중인 니마코의 작품 ‘Fly High’. [사진 브릭캠퍼스]

 

자신의 뿌리로부터 출발한 작품 세계

니마코의 또 다른 대표작 ‘카발리에 누아르(Cavalier Noir)’는 직역하면 ‘검은 기사’라는 뜻인데요, 8만 개가 넘는 레고 브릭으로 검은 유니콘과 용맹한 어린 기사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는 서양의 강대국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을 탄 나이 든 백인 영웅들의 기념 동상들이 명백한 식민주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음을 떠올리고 일반적인 기념 동상에선 볼 수 없는 검은 유니콘을 탄 멋진 흑인 아이 조각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희망과 자유의 상징인 유니콘과 어린 기사를 통해 서구 문명 중심의 사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과 그에 대한 비판 의식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죠.
 
니마코 작가는 이처럼 언제나 브릭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역동적이고 상징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는 가나계 캐나다인으로 캐나다에서 흑인으로 자라면서 겪어온 인종차별 문제, 그리고 종종 저평가되곤 하는 흑인 아티스트들을 대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힙합 음악이나 패션 산업 등에서 소위 ‘블랙 아트’가 많이 소비되고 있지만 아직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니마코는 레고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한 메시지를 담아 오고 있습니다. 작가는 앞으로도 많은 흑인 아이들이 그의 작품을 보며 그들 자신을 투영하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브릭캠퍼스 제주에 전시중인 니마코의 작품 ‘Cavalier Noir’. [사진 브릭캠퍼스]

브릭캠퍼스 제주에 전시중인 니마코의 작품 ‘Cavalier Noir’. [사진 브릭캠퍼스]

THE WINGED UNICORN & THE WINGED STALLION(좌). FLOWER GIRL (우). [사진 Ekow Nimako]

THE WINGED UNICORN & THE WINGED STALLION(좌). FLOWER GIRL (우). [사진 Ekow Nimako]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색의 절제

사진에서 보셨다시피 그는 작품을 만들 때 주로 한 가지 색만 사용합니다. ‘카발리에 누아르(Cavalier Noir)’와 다른 대형 작품들은 검은색 브릭만을 사용했고, ‘플라이 하이(Fly High)’의 경우는 흰색 브릭만을 사용했죠. 이유를 물어보니 그는 자신의 작품이 미술 조각으로 먼저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레고를 생각하면 화려한 색채와 그것을 가지고 놀 때의 즐거움 같은 것을 떠올리곤 하죠. 때문에 그는 한 가지 색으로만 작품을 만들 때, 그것이 조형물에서 소위 ‘레고스러움’을 한 꺼풀 벗겨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는 레고를 사랑하고 다양한 작품의 소재로 늘 사용하고 있지만 아티스트라면 사용하는 소재의 본질을 초월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특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레고와 같은 소재를 사용할 때는 더욱 말이죠.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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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기 장현기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필진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 전시, 콘서트, 뮤지컬 등 라이브 콘텐츠의 프로듀서이자 연출가. 20여년간 수백 편의 라이브 콘서트, 쇼, 뮤지컬, 전시 등을 제작 연출했다. 2014년부터 전시 기획자로 변신하여 활동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브릭 아트에 매료되어 4년간의 준비 끝에 세계 최초의 브릭 아트 테마파크 ‘브릭캠퍼스’를 오픈, 현재 제주와 서울에서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장난감으로 여겨지던 브릭이 최고의 예술 소재가 될 수 있고,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재미있고도 놀라운 사실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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