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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구하고 불법체류 들킨 알리···"영주권 주자" 청원 속출

중앙일보 2020.04.22 05:01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난달 23일 강원 양양군의 한 3층 건물 화재 현장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화상을 입은 카자흐스탄 국적의 알리(28). 사진 양양 손양초교 장선옥 교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난달 23일 강원 양양군의 한 3층 건물 화재 현장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화상을 입은 카자흐스탄 국적의 알리(28). 사진 양양 손양초교 장선옥 교감

 
“화재로부터 10여명의 생명을 구한 의인이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에 머무를 수 있게 도와주세요.” 화재 현장에서 10여명의 주민을 대피시키고 구조하려다 화상을 입었으나 치료과정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밝혀져 한국을 떠나게 된 외국인 노동자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국민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3건의 글 올라와
프랑스에선 영주권주고 소방관으로 특채해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노동자 율다쉐브 알리 압바르(28)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내용이 담긴 청원글 3건 올라와 모두 합쳐 현재 3500여 명이 동의했다. 한 청원인은 “카자흐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화재 현장에서 불법체류 신분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 한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불법체류 신분이 드러날 위험이 있어서 도주할 수도 있었지만, 생명을 살리겠다는 신념으로 의로운 일을 행했고 많은 생명을 살렸다”며 “영주권을 줘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가 인정한 의인으로 선정해 합당한 혜택을 누리고 명예로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또 다른 청원인은 “화재현장에서 10여명의 목숨을 구했기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알리에 대한 법적 구제와 영주권 및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 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남겼다. 
 
청원한 이들은 프랑스에서 난간에 매달린 아이를 구한 불법체류자에게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영주권을 부여하고, 소방관으로 특채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화마 속 10명 구한 불법체류자 추방이 아닌 영주권이라도 줘야 하지 않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청원인은 “프랑스에서 이런 일을 한 청년에게 영주권을 줬고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영주권이나 취업비자를 늘려주는 정부의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양양군 홈페이지에도 10건 넘는 글 올라와 

지난달 23일 오후 11시22분쯤 강원 양양군 양양읍에 있는 3층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모습. 사진 강원도 소방본부

지난달 23일 오후 11시22분쯤 강원 양양군 양양읍에 있는 3층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모습. 사진 강원도 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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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양양군 홈페이지에도 알리와 관련된 응원글이 10건을 넘겼다. 알리는 지난달 23일 오후 11시22분쯤 강원 양양군 양양읍에 있는 자신의 원룸에 들어가다 화재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 주민 10여명을 대피시켰다. 이후 2층에 있는 50대 여성을 구조하려다 목과 손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다행히 양양 손양초교 장선옥 교감과 이웃 주민들이 알리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되면서 서울의 한 화상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장 교감과 이웃 주민은 십시일반 모은 성금으로 700여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냈다. 치료과정에서 불법체류 사실을 법무부에 자진신고한 알리는 다음 달 1일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7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알리는 월세방을 전전하며 공사장 등에서 번 돈으로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 두 아이를 부양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교감은 “신분이 탄로 날 텐데 왜 불 속으로 뛰어들었냐고 물었더니 (알리가) ‘사람은 살려야 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며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비록 불법체류자지만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반드시 의상자로 선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불법체류자였던 스리랑카 국적의 니말(41)이 2017년 2월 경북 군위군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들어가 90대 할머니를 구해 의상자 인정과 함께 영주권을 받았다. 불법체류 외국인이 의상자가 된 건 니말이 처음이다.
 
양양=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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