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길속 46명 구하고 고독사 막고···'철밥통' 내찬 열혈 공무원

중앙일보 2020.04.22 05:00
 지난해 9월 울산 염포부두 근처에서 커다란 굉음과 함께 뭉게구름이 솟아올랐다. 인근 관제센터에서 해양경찰구조대로 신고가 들어간 지 5분여 만에 구조정 한 대가 도착했다. 화학제품을 운반하던 배가 폭발해 옆에 있던 유조선에 불길이 옮겨붙어 유조선에서 기름 끓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물 위로 뛰어내리거나 사다리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하나씩 구조하기 시작했다.
 

두척의 선박 화재에서 46명 구한 해양경찰
단맛 높은 담양 딸기 개발한 공무원

지난해 9월 30일 오후 울산시 동구 염포부두에서 폭발 화재가 발생한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이란드'호 관계자들이 화재 선박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9월 30일 오후 울산시 동구 염포부두에서 폭발 화재가 발생한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이란드'호 관계자들이 화재 선박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아직 사람 있어요!" 

구조정에선 유조선 갑판 위 상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배에서 내리는 마지막 선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구조대원으로 나선 울산해양경찰서 박철수(33) 경사가 물었다. "위에 혹시 사람이 더 있어요?" 
 
배에선 펑, 하는 폭발음이 계속 들려왔다. 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 경사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소리에 사다리를 타고 홀로 배 위로 올라갔다. 갑판 위에 남아있던 사람은 외국인 선장이었다. 
 
박 경사는 외국인 선장에게 선원이 몇 명인지, 남아있는 사람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번뜩 '사람이 더 있으면 큰일이다' 싶은 생각에 선장에게 "배 구조를 모르니 남아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같이 돌아보자"고 말했다. 3층 구조로 된 배 곳곳은 잠겨있어 비상열쇠를 동원해가며 일일이 방을 확인해야 했다. 
 
선박을 수색하는 사이 한쪽에선 하선 방송이, 또 한쪽에선 작은 폭발음들이 계속 들려왔다. 남아있는 선원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니 불이 붙은 쪽 스프링클러로 눈길이 갔다. 불길을 잠시 막을 수 있다면 폭발까지는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스프링클러로 달려갔다. 수동으로 작동시켜 물길이 불꽃을 향하게 만들고 나서야 선장을 구조 보트로 내려보냈다. 마지막으로 사다리를 타고 구조 보트에 오르자 구토가 몰려왔다. 연기를 너무 많이 들이마신 탓이었다. 그는 이날 선장과 선원 등 46명의 목숨을 구했다. 
 
[박철수 경사 제공]

[박철수 경사 제공]

46명의 인명구조, 그리고 열흘의 입원

배에서 내린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꼬박 열흘간 병원 신세를 졌다. 21일 교대근무로 6살과 4살 두 아들을 돌보고 있던 박 경사와 전화 연결이 됐다. 전화기 너머로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고 불을 끄려고 하면서 연기를 많이 마셨던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공기탱크를 착용하고 올라갔어야 했는데, 너무 상황이 급박해서 못 챙긴 탓"이라고 병원 신세를 진 것을 부끄러워했다. "병원 입원으로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겠다"고 말을 하자 그가 웃었다. 그는 "그 반대"라고 했다. 교사인 그의 아내는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에게 되레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에도 "세월호 사고 현장에 내가 학생들과 있었다면 나도 헌신한 선생님들처럼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오던 터였다. 그는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일인 만큼 보람 있다"고 말했다.  
 
 

'철밥통'이 아닌 진짜 공무원

인사혁신처는 이날 박 경사가 '올해의 대한민국 공무원상' 대통령 표창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와 함께 선정된 사람은 총 80명이다. 
 
이재은 광주시 광산구 지방사회복지주사는 독거노인과 1인 가구의 전기 사용과 통신 사용빈도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고독사'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박원성 특허청 행정주사는 8년간 특별사법경찰로 지내면서 가짜 '송중기 마스크팩' 200억원 어치를 적발했다. 45일간 밤을 지새우며 가짜 상품 단속에 나서 5800억원에 달하는 '짝퉁'을 압수했다.
 
전남 담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일하는 이철규 지방농업연구관은 봄철 대표 과일인 딸기 신품종을 개발해냈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죽향'과 '담향', '메리퀸' 신품종은 기존 딸기보다 단맛이 뛰어났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이인우 농업주사보는 광학현미경을 활용한 '중국산 고춧가루' 판별법을 만들었다. 
 
 올해 6회째인  '대한민국 공무원상'은 59개 정부부처와 기관이 추천해 현장실사와 국민 검증을 거쳐 선정된다. 올해는 대통령 표창을 31명의 공무원에게, 국무총리표창을 32명에게 준다. 훈장은 7명, 포장은 10명이 받게 됐다. 인사처는 ▷사회적 가치 실현▷일자리 창출▷국민안전▷인재양성▷적극 행정 5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발했다고 밝혔다. 올해의 공무원상을 받으면 특별승진이나 승급, 성과상여급 등 인사상 특전이 주어진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