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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고 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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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메르스 안 겪은 美·유럽 코로나 실패, 세게 앓은 한국은 선방

중앙일보 2020.04.22 00:30 종합 27면 지면보기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한국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서 호흡기 감염병 전투 기초를 닦았다. 2009년 신종플루에서 선방했지만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서 혹독한 실패를 맛봤다. 코로나19 전투에서는 선전한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 ‘보건 선진국’인 미국·유럽은 코로나19에서 매우 고전하고 있다. 한국에 감염병 예방을 전수해준 나라인데, 왜 이리됐을까.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한국이 코로나19 선방하는 이유
메르스 때 잘못 대처해 전국 확산
교훈 얻은 국민이 슬기롭게 대처
질본 컨트롤타워도 메르스 유산

이들의 공통점은 사스·메르스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5년 메르스는 중동과 한국에서 유행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195명(2015년 9월 기준) 감염돼 압도적 1위였다. 한국이 186명, 아랍에미리트 81명, 요르단 25명, 카타르 13명 등의 순이다. 사우디의 코로나19 환자는 1만484명, 한국은 1만683명, 아랍에미리트는 7265명, 요르단은 417명, 카타르는 6015명(21일 오전 9시 기준)이다. 선진국보다 훨씬 적다. 오만·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들도 선방하고 있다. 8만여명의 환자가 발생한 이란은 예외다.
 
영국의 메르스 환자는 4명, 독일 3명, 미국·네덜란드·프랑스 각각 2명, 이탈리아·오스트리아는 각각 1명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0명이었다. 일본도 그랬다. 이들은 코로나19에서 고전하고 있다. 2003년 사스 때도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영국·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스위스·스웨덴 등은 1~9명, 일본은 0명이었다. 독일(10명)·미국(71명)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홍콩(1755명)·대만(693명)·싱가포르(206명) 등에 비할 바가 못 됐다. 한국 국립보건원은 엄격하게 대응했고, 사스 확진환자를 3명으로 막았다. 사스를 계기로 이듬해 국립보건원이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나중에 신종플루가 계절독감보다 약간 센 정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과 치료제(타미플루)를 대거 비축했던 선진국들이 나중에 ‘WHO의 사기극’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로 신종플루는 급이 낮았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보건 선진국들은 호흡기 전파 신종감염병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다.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중앙임상위원장·WHO 감염병위험관리 자문위원)는 “선진국의 감염병 전문가와 보건당국은 사스·메르스 등을 보고 ‘보통 놈이 아니다. 앞으로 뭔가 큰 게 오겠구나’라고 대비했을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은 그렇지 않았다. 국민이 경험하고 학습해서 경각심을 갖고 있어야 실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는데,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메르스 세게 경험할수록 코로나 선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메르스 세게 경험할수록 코로나 선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오 교수는 특히 코로나19 선방의 1등 공신으로 ‘메르스 경험’을 꼽는다.
 
“메르스 경험이 우리에게 준비를 시켰다. 전화위복이다. 그게 없었으면 이만큼 했을까. 중국 우한처럼 봉쇄하지 않고도 시민들이 스스로 대응했다. 메르스 때 잘못하면 전국으로 퍼지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이행했다. 대구·경북에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던 것이다. 동남아는 2003년 사스를 마지막으로 경험했지만 한국은 사스 이후 메르스가 와서 (중동을 제외하고) 거의 유일하게 뼈아픈 경험을 했다.”
 
메르스의 다음 교훈은 의료기관의 일사불란한 대처다. 메르스 때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이 아픔을 겪었다. 이번에는 의료기관들이 초기부터 선별진료소·안심병원을 열었고 음압병실을 갖췄다. 환자가 발생해도 병원을 통째로 셧다운한 곳은 일부에 불과하다. 군사작전 하듯 코로나19에 대비했고 환자가 나오자 빈틈없이 대처했다. 메르스 때 첫 환자 발생 이후 약 보름간 정부가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이번에는 확진환자의 동선이 거의 실시간으로 공개됐고, 위치추적·손목밴드 등 다소 지나칠 정도의 기법을 동원했다. 메르스를 겪지 않았으면 이번에 개인정보 보호냐, 공익이냐를 두고 논란을 겪다가 타이밍을 놓쳤을 수도 있다.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메르스 덕분에 심평원의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과 ITS(해외여행력 정보제공 프로그램)가 결합해 의료기관에서 해외여행갔다 온 환자를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세계 유일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전병율 교수는 “진단키트, 환자 동선 추적 조사, 정보 공개 등이 메르스에서 왔고, 질병관리본부가 방역의 컨트롤타워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메르스 때는 질본이 보건복지부 대책본부에 흡수되면서 복지부가 방역을 주도했다.  
 
복지부 장관이 설쳤고 질본본부장이나 국장이 ‘현장 조사 요원’으로 전락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중앙수습대책본부(복지부 중심) 따로, 방역대책본부(질본 중심) 따로 체계를 유지했고, 매일 오후 4시 합동회의에서 특별입국절차·생활치료센터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해 결정했다. 정은경 질본본부장은 상황실을 지키며 화상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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