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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적명 스님/ 20190505

권혁재의 사람사진 /적명 스님/ 20190505

“세수 여든인데 더 늦으면 제대로 사진 한장 못 남길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 적명 스님 존영 촬영을 요청한 이가 한 말이다.
스님을 모시는 이에게서 처음 사진 촬영 요청받은 게 2013년이다.
그러마 약속해놓고 무려 여섯 해 동안 연이 닿지 않았다.
그런 차에 세수 여든이라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문경 봉암사는 1947년 성철ㆍ청담ㆍ자운ㆍ월산ㆍ혜암ㆍ성수ㆍ법전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며 결사한 수도도량이다. 적명 스님은 수행하는 '영원한 수좌'를 자처했다.

문경 봉암사는 1947년 성철ㆍ청담ㆍ자운ㆍ월산ㆍ혜암ㆍ성수ㆍ법전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며 결사한 수도도량이다. 적명 스님은 수행하는 '영원한 수좌'를 자처했다.

 
사실 사진기자 입장에서 보면 적명 스님은 꽤 신비로운 인물이다.
일반 대중 앞에 거의 나서지 않는다. 언론 인터뷰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봉암사 대중이 열두 해전부터 조실로 추대했으나 극구 거절한 일화도 있다.
봉암사 최고 지도자 ‘조실’을 마다하고 수행하는 ‘수좌’를 고집한 스님을 두고
대중은 ‘영원한 수좌’라 일컫는다.
 
 
'깨댤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니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깨달은 자이다.' - 유고집 〈수좌 적명〉 본문 중에서

'깨댤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니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깨달은 자이다.' - 유고집 〈수좌 적명〉 본문 중에서

 
스님도 그렇거니와 문경 봉암사 또한 신비로운 도량이다.
일반 불교 신자에게 봉암사 출입은 철저하게 금지돼 있다.
한 해에 단 하루 ‘부처님오신날’만 산문을 열고 출입을 허락한다.
그런 신비한 도량에서 신비에 싸인 적명 스님 촬영이니 기대에 찼다.
 
 
"증이 중다워야 한다"는 말씀처럼 번듯한 존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증이 중다워야 한다"는 말씀처럼 번듯한 존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인사를 하며 여섯해 만에 사진을 찍으려 서울에서 왔노라 말했다.
“수행하는 중이 빼입고 뽐내며 사진 남기는 일은 중다운 게 아니오.
중이 중다워야지, 중이 사진 남겨서 뭣 하겠소.”
한치 주저 없는 적명 스님의 답, 청천벽력이었다.
사진 요청한 이가 더 적극 설득에 나섰으나 어림도 없었다.
 
 
사진 기자의 본문을 다하게 해달라는 요청에 스님은 웃음으로 답했다.

사진 기자의 본문을 다하게 해달라는 요청에 스님은 웃음으로 답했다.

 
사진은 없던 일로 하고 절 구경 시켜 주겠다며 스님이 길 나섰다.
마침 동행한 이들에겐 한없이 친절한 해설사였다.
찍고 기록하여 남기는 일이 사진기자다운 일이니
먼발치서나마 본분을 하게끔 해달라고 스님에게 요청했다.
스님은 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지난해 연말 적명 스님이 갑작스레 입적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다비식에 걸린 존영, “중이 중다워야 한다”는 말씀 그대로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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