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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총선의 복기 “쌈지뜨면 진다, 대해로 나가라”

중앙일보 2020.04.22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복기(復棋)는 바둑의 미덕으로 회자되어왔다. 바둑이 끝난 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뒤로 미룬 채 두 기사가 머리를 맞대고 바둑 한판을 되돌려보는 모습은 바둑동네만의 근사한 풍경이었다. 21대 총선에 대한 복기가 한창이다. 바둑으로 풀어보는 총선은 어떤 것일까.
 

위성정당은 다들 ‘꼼수’라 불러
실은 전형적인 강자의 논리일뿐

이번 선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바둑용어는 ‘쌈지뜨다’였다. 시원하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갇혀 삶을 도모하는 모습을 바둑에선 쌈지뜬다고 한다. “쌈지뜨면 지나니 대해(大海)로 나가라”는 바둑격언은 그래서 나왔다.
 
정치평론가들의 해석을 보면 미래통합당의 패인은 쌈지에 있고 쌈지에 심취하여 대해로 나가지 못한 데 있다. 스쳐 지나가는 영상들이 있다. 황교안 대표가 삭발하는 모습, 태극기 부대나 문재인을 끌어내리자고 외치는 어떤 목사님의 무대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들이다. 환호성이 엄청난 장소였지만 전문가들은 그곳이 바로 ‘쌈지’였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머뭇대느라 대해로 나갈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왜 그곳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는지, 그것이 본인의 신념인지 아니면 착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은 쌈지를 뜨고 말았다. 무너진 보수야당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순해졌다. 쌈지로 판명 난 이념의 극지를 벗어나 어떻게 대해로 나갈 것인가.
 
여당도 금태섭 의원을 배제할 때 쌈지뜨기의 징후를 보였다. 중도 유권자들을 당혹, 또는 실망케 했던 조국이란 이름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러나 전 국민을 안방으로 몰아넣은 코로나가 방향을 틀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절절매는 모습, 한국에 찬사를 보내는 해외언론의 모습을 안방에서 지켜보면서 기분이 풀린 나머지 소소한 것들을 잊기로 했다. 코로나는 우리를 방구석으로 몰아넣었지만 동시에 대해로 나간 느낌을 주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바람에 실려 대해로 나갔다.
 
비례위성정당의 ‘꼼수’ 논쟁도 이번 총선의 중요한 이슈였다. 꼼수는 상대를 호리는 수임과 동시에 고수 눈엔 훤히 보이지만 하수 눈엔 안 보이는 수를 말한다. 이번 위성정당 사건은 모두가 꼼수임을 인정하고 다들 속속들이 알았다는 점에서 꼼수라고 부르기엔 문제가 있다. 꼼수는 보통 들통이 나면 망하는데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정체가 뭘까. 바둑기사는 눈에 보이는 탐스러운 실리를 놓고 갈등을 일으킨다. 강자와 강자가 만나면 함부로 실리를 취하지 않는다. 실리는 현금과 같아서 너무 밝히면 주변이 엷어지고 엷어지면 공격받아 일거에 허물어질 수 있다. 과거 이창호 9단은 바로 그같은 위험성을 각인시켜준 대명사 같은 존재다. 수많은 강자들이 실리를 밝히다 이창호의 제물이 됐다.
 
그러나 상대가 이창호가 아니고 약자라면 어쩔 것인가. 탐스러운 실리를 일단 움켜쥐고 상대의 공격을 적당히 뭉개면 되는 것 아닌가. 바둑판에서 많은 강자들이 그렇게 했고 이번 위성정당이 바로 그랬다. 위성정당은 꼼수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강자의 논리였다. 결국 명분 없이 얼굴 두껍게 무리수를 밀고 나왔지만 아무도 대가를 치르게 만들 수 없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눈물은 바로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약자의 아픔의 표현일 것이다.
 
‘먹고 보자’가 성공했지만 어두운 그림자는 남았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17일자 중앙일보에 “과거 빈사상태의 진보가 살아난 것은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였다”고 말했다. 같은 연장선에서 ‘바보 노무현’이 남긴 낭만적 요소가 사라지고 정치공학만 남는다면 진보는 어느 날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위성정당이란 일탈에 대해 부끄러움을 간직해야 한다. 초심을 잊지 말고 위성정당이 남긴 누추한 이미지를 반드시 씻어내야 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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