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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일으킨 청 황제, 천연두 탓 황급히 귀국…역사책에 기록 않고 숨겨”

중앙선데이 2020.04.18 00:20 682호 19면 지면보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은 얼마나 정확한가. 서울대 동양사학과 구범진 교수는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 기존 병자호란 서사를 뒤집는 사례를 많이 소개했다. [사진 임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은 얼마나 정확한가. 서울대 동양사학과 구범진 교수는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 기존 병자호란 서사를 뒤집는 사례를 많이 소개했다. [사진 임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누군가에게는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구범진(51) 교수가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청나라 역사 전문가인 그는 1636년 조선을 침략해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청황제 홍타이지가 인조의 항복을 받자마자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는 주장을 편다. 당시 서울에서 유행하던 천연두가 두려웠다는 것이다. 그런 가설을 몇 해 전부터 공론화해왔다. 2016년 학술논문(‘병자호란과 천연두’)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 초에는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쓰고 내용을 확충한 단행본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까치)을 펴냈다. 흥미로운 점은 청이 그런 사정을 역사책에 기록하지 않고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중국과 전염병’이라는 조합도 그렇지만, 이를테면 홍타이지의 현대판인 중국의 시진핑이 코로나 발생 사실을 한동안 숨겼다는 점과도 공교롭게 겹친다.
  

청나라 역사 전문가 구범진 교수
홍타이지 아들 천연두 걸려 사망
조선 정벌 중 감염 우려 조기 귀국

역사 연구자들, 전쟁의 실상 놓쳐
강화도 병사들 패배 부각해 서술
자학에 빠지지 말고 균형 잡아야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펴내
 
구 교수의 병자호란 책은 물론 천연두만 다룬 건 아니다. 한문은 물론 만주어를 해독하는 그는 청실록, 청실록의 원문인 만주어 사료 등을 폭넓게 활용해 책을 썼다. 그렇게 쓰인 책은 전례가 드문, 제대로 쓰인 병자호란 전쟁사라는 평가다. 그동안 잘못 알려져 있었다며 바로잡은 역사적 사실이 많다. 우선 지금까지 미지수였던 청군 병력을 3만4000명으로 추정했다. 아무런 근거 없이 12만8000명 설이 통용됐었다. 국경을 넘은 청군이 초고속 진군, 시차진군이라는 허를 찌르는 작전으로 나오는 바람에 조선군이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내용도 있다. 학계에서 사실로 ‘합의’될 경우 실익 없는 ‘명분-실리’ 논쟁만 일삼다 자멸했다는 우리 병자호란 서사의 자학적인 색채가 좀 걷힐지도 모르겠다. 지난 8일 구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천연두 얘기가 가장 궁금하다. 청 제국을 건설한 만주인들이 유전적으로 천연두에 취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책에도 썼는데(262쪽), 청 제국의 주역과 현대 중국인들은 다르긴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전염병에 취약하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나.
“천연두를 먼저 경험한 건 당연히 중국이었다. 유라시아 정주지역에서 발견되는 풍토병이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왔다. 아시아 동쪽 지역, 만리장성 이북의 초원지대 유목민 사회에서 천연두를 앓았다는 기록은 16세기가 돼서야 나타난다. 이후 18세기까지 천연두는 청나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등장한다. 가령 홍타이지의 아들이었던 순치제(順治帝)는 천연두를 피하려고 피두(避痘)를 자주 했지만 결국 천연두에 걸려 죽었다. 만주인들은 천연두를 ‘마마’라고 부르며 극도로 두려워했다. 마마의 발생을 신의 뜻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병자호란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보고 홍타이지의 조기 귀국을 은폐하려 한 건가.
“1644년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해관(山海關)을 뚫고 중원에 진출해 대제국으로 성장하기 전까지 청에게 조선은 중요한 이웃이었다. 자기들보다 대국, 문명국이었다. 그런 나라를 정벌하는 병자호란은 그래서 무척 중요한 전쟁이었다. 홍타이지는 조선 정벌에 나선 청나라 군대가 하늘의 은혜를 입고 있다고 표현했다. 성스러운 전쟁, 정의로운 전쟁, 신이 도와야 하는 전쟁이었던 거다. 그런데 실록을 편찬할 때 가급적 꺼림칙한 일은 쓰지 않는다. ‘회호(回護)한다’고 하는데 쓰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게 된다. 청황제가 조기귀국했어도 전쟁에 이겼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나. 굳이 조선에서 만난 마마 얘기를 쓰지 않은 거다.”
 
구 교수는 “천연두가 청나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연구자들 사이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런데 홍타이지는 천연두를 앓지 않아 면역이 없기 때문에 걸릴 경우 위태로운 ‘생신(生身)’이었는데도 직접 조선 정벌에 나섰다. 문제는 남한산성에서 조선왕조와 대치하던 정축년(1637년) 정월 16일과 17일 사이, 청군 진영에 중대한 작전 변경이 있었다는 점이다. 갑자기 전쟁의 조기종결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뭔가 있는 것 같아 천연두 관련 기록을 뒤지다 종전 후 여섯 달 뒤인 정축년 7월 『청태종실록』 기록에서 홍타이지가 마마를 피해 먼저 귀국했다는 ‘피두선귀(避痘先歸)’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홍타이지의 조기귀국 사실을 폭로하는 결정적인 증거라는 얘기다.
 
무척 기뻤겠다.
“짜릿했다. 사실 논문을 완성한 후 주변에 읽혔을 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는 반응을 받던 차였다. 아직 피두선귀 구절을 접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료를 다시 뒤졌고 결국 찾게 됐다.”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책에서 제시한 근거들만으로 홍타이지가 천연두가 두려워 조기 귀국했다고 역사책을 고쳐 쓸 수 있는 사안인가.
“연구자들은 재미있다고 판단돼도  자기들 연구 주제가 아니면 대개 인용이나 반박을 하지 않는다. 역사책을 고쳐 쓰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연구자들로 부터 맞는 얘기로 인정받는 게 내가 바라는 최선의 상황이다.”
 
책대로라면, 우리의 병자호란 지식에 오류가 많아 보이는데 병자호란 연구자는 많지 않나.
“우리의 병자호란 서사는 강화도가 어떻게 점령됐는지를 면밀히 따지기보다 강화도를 지키던 병력이 술 마시고 놀다가 싸움에서 패했다는 식으로, 모든 사안을 도덕적 책임론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데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추궁과 단죄만 하려다 보니 정작 전쟁의 실상을 놓치게 된다. 그렇게 잘못된 내용이 정사(正史 )가 돼버린다. 이런 현실이 바뀌려면 연구자들의 생각부터 사실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나는 좀 회의적이다. 역사 연구는 천문학 하는 것 같다. 갈릴레오가 아무리 지구가 돈다며 증거를 제시해도 사람들이 안 믿지 않았나. 패러다임 시프트 같은 전환이 필요하다.”
 
구 교수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역사 연구자들이나 일반인들의 역사감각이 자기도취와 자학, 두 극단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고 했다. 세종대왕에는 열광하면서도 병자호란 시기에 대해서는 한없이 자학적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병자호란이 최악의 치욕스러운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과도하게 자학적인 대목들이 있다는 얘기다.
  
천연두, 청나라 역사에 지대한 영향
 
그러면서도 한국은 중국 주변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국의 일방적인 역사 서술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문명국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역사기록을 갖고 있어서다. 중국의 독주에 ‘카운터에비던스(counterevidence)’, 그러니까 반증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라는 얘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의 위상에 변화가 오게 될까.
“미래를 얘기하는 역사학자는 약장수고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내다본다면 주식을 사야 한다. 이번 사태로 구미 선진국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게 깨진 것 같다. 중국은 잘 대처한 것처럼 처신하는데 사실은 중국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닌가. 언론 자유가 없는 정치적 억압구조에서 발생한 일이다. 저런 시스템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 같다. 우리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처리하는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헬조선 얘기가 쑥 들어가지 않았나. 너무 도취나 자학에 빠지지 않고 균형을 잡아가면 좋겠다.”
 
쉽지 않은 내용, 추리소설 같은 글쓰기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은 녹록하지 않다. 학술서 냄새가 물씬 난다. 미주(尾註)·참고 문헌·찾아보기가 두툼하다. 하지만 마치 추리소설 읽는 것처럼 흥미 수위가 상승하는 구간들이 있다. 구 교수 특유의 글쓰기 때문이다.
 
전쟁의 실상 규명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사료 분석과 추론을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역사학적 사고 프로세스를 보여주려 했단다. (32쪽)
 
그런 의도가 반영된 대표적인 대목은 역시 청나라의 작전 변경, 홍타이지의 은폐 흔적을 드러내는 제5장 ‘반전’, 제6장 ‘마마’다. 정축년 정월 16일 청군 막사에 존재했을 진실의 순간을 향해 긴장감 있게 치닫는다.
 
강화도의 허망한 함락 원인을 분석한 제4장 ‘조류’는 세계적인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에 두 차례나 등재된 바 있는 변도성 국립해양조사원 연구관의 도움을 받았다. 일종의 학제간 연구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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