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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위에 부족, 민주주의의 실패

중앙선데이 2020.04.18 00:20 682호 21면 지면보기
정치적 부족주의

정치적 부족주의

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지음

『타이거 마더』 에이미 추아 신작
혈연·지연·학연 폐해 지적

김승진 옮김
부키
 
씨족이 모여 부족, 부족이 모여 민족이 된다. 민족이 태어난 후에도 부족은 생명력을 발휘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부족에서 유대감·소속감·안정감을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연·지연·학연에 얽힌 ‘우리끼리 똘똘 뭉치기’는 부정부패를 낳는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미국의 ‘부족 문제’를 파헤친다. 부족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때문에 미국이 국내외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는지 설파한다. 대외적으로 미국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큰 대결 구조에 집중하느라 ‘부족’이라는 변수를 간과했다. ‘나’는 ‘남’을 비추는 거울이다. 미국이라는 ‘나’는, 세계의 나머지에 ‘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실패는 ‘시장 실패’나 ‘민주 실패’이기 이전에 ‘부족 실패’였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베트남 문제의 ‘부족’ 차원을 몰랐다. 패망 전 남베트남은 인구 1%에 불과한 화교가 부(富)의 70~80%를 장악하고 있었다. 친미 정부가 친자본주의 정책을 펼 때마다 대중이 분노했다. 자본가를 위한 정책은 곧 화교를 위한 정책이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북베트남이 승리한 이유는 ‘계급 모순’이 아니라 ‘민족 모순’을 파고든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이라크에 수니파·시아파라는 ‘부족’이 있다는 것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이전에 파슈툰 부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 리비아에는 140개 부족이 있다는 것도 상대적으로 경시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당시 시위 장면. 에이미 추아 교수는 ‘진보 부족’의 운동이 대중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AP=연합뉴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당시 시위 장면. 에이미 추아 교수는 ‘진보 부족’의 운동이 대중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AP=연합뉴스]

미국을 민족국가를 넘어선 ‘초민족국가’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저자의 표현으로 미국은 ‘수퍼그룹(super-group)’이다. 그런데 ‘수퍼그룹’에 문제가 생겼다. 30~40년 내로 미국에서 백인은 소수파다. 백인이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던 때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때 미국은 보편적·계몽적·포용적인 너그러운 패권국가였다.
 
저자의 날카로운 미국 내부 ‘부족 갈등’도 해부에서 두 개의 백인 부족이 보인다. 자신이 ‘세계 시민’이라고 자부하며 우쭐한 고학력 백인이 보인다. 다른 쪽에서는 성조기를 흔드는 보수적·애국적·저학력 백인이 보인다. 그들 중 상당수는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에 열광한다. ‘신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고 믿는다. 그들은 기도 많이 하고 십일조를 잘 내면 된다고 믿는 부족이다.
 
민족이 태어난 후에도 부족은 생명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좌파 부족’은 저소득층으로부터 유리됐으며 저소득층을 배제하는 엘리트주의자라고 저자가 지적한다. 부족주의는 양면적이다. 부족은 소속감에 더해, 타인을 배제하는 데서 오는 ‘쾌감’을 준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민주주의가 국내 부족의 갈등을 증폭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특히 민주주의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추동하는 부족주의와 상대해야 한다.
 
어떻게 부족주의 문제를 풀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지도자들이 일단 부족주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미국 경우에는, 자신의 본 모습, 건국 이념, ‘건국 신화’로 돌아가야 한다. 인종이나 종교가 아니라 공동의 이상과 가치, 공동선을 추구하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이상은 항상 현실을 넘어섰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약속이다” “미국을 하나로 묶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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