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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vs 천하체계…코로나 이후 ‘페이크 세계화’ 계속

중앙선데이 2020.04.18 00:20 682호 24면 지면보기

미래 Big Questions 〈13〉 세계화의 미래 

페테르 파울루벤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1617 또는 1618,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페테르 파울루벤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1617 또는 1618,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걸까? 미국 아마존을 통해 책 몇 권 주문하려다 한동안 한국으로 배송이 어렵다는 공지를 읽고 놀랐다. 과거엔 당연하던 일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은 세상. 그런 사실에 놀라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놀랐다.
 

제품·사람 이동 자유로운 세계화
고대엔 균형·보편성의 윈·윈 세상

16세기 유럽 무역선 직거래 나서
선택된 자들만의 게임으로 전락

2차대전 후 ‘팍스 아메리카’ 기승
‘친구 vs 적’ 프레임에 중국 반기
미·중 둘 다 가짜 세계화 어쩌나

세상은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에 살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디자인된 옷을 입고, 독일 차를 몰며 미국식 드라이브 스루 체인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 세상. 반대로도 비슷하다. 한국 기업이 만든 휴대폰과 차를 세계인이 구매하고, 알프스산 꼭대기와 칠레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마트에서 한국 컵라면을 주문할 수 있었다.  
 
경복궁에선 한복을 곱게 입은 외국인 관광객을 볼 수 있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은 성지 순례 온 한국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제품과 서비스와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세상. 경쟁력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이 된 그런 세상 말이다.
  
도킨스의 ‘밈’ 바이러스, 고대부터 전파  
 
‘백인의 부담’ 1899년 잡지 Judge 삽화.

‘백인의 부담’ 1899년 잡지 Judge 삽화.

물론 세계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수십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호모 사피엔스. 모두의 뿌리가 같은 곳에 있으니, 세계화는 결국 다시 모두가 함께 살고 생존하던 인류의 ‘원천 상태(Urzustand)’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원시시대에도 그랬다. 중동에서 발견된 돌도끼와 유라시아 끝 한반도에서 발견된 돌도끼는 구별하기 어렵고, 불과 바퀴와 농사기술은 수만, 수천 년 전 세계화를 통해 전파됐다. 칼로 사람의 살을 벨 수 있고, 활과 화살로 적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 초원과 강과 바다를 건너 세계인에게 확장된 혁신이었다.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밈(meme)’이라 부른 끈질기고 전파력이 강한 생각의 바이러스 역시 고대 세계화를 통해 세상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세상과 나를 만든 알 수 없는 전능한 존재”에 대한 상상; “어제까지 세상을 바라보던 부모님이 눈을 감고 가셨을 그 어딘가”에 대한 믿음; “간절하게 소망하면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누군가의 뇌에서 처음 시작해 전 세계인들의 뇌 속으로 파고든 고대 세계화의 결과물이다.
 
그리스로마 전통의 재발견 덕분일까? 혹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때문일까? 아니면 프로테스탄트적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도움 덕분일까? 이유야 어떻든 결과는 분명하다. 16세기를 계기로 유럽과 나머지 세상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당사자들도 느끼기 어려웠을 정도로 미세했던 초기의 차이는 18, 19세기에 초격차 수준의 과학기술, 군사, 그리고 경제적 차이로 증폭했다. 덕분에 스페인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은 새로운 개념의 세계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고대 세계화의 핵심은 ‘균형과 보편성’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마을과 문명 사이의 세계화는 대부분 ‘윈-윈’이었다. 서로가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기에 - 적어도 평균적으로 - 거래의 결과는 공정했다. 더구나 거래한 물건의 원산지를 알 수 없었거나, 알더라도 접근할 수 없었기에, 16세기 이전의 세계화는 대부분 보편적이었다.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 화약과 나침반과 지폐는 중간 거래를 책임지던 민족에게 역시 전파되었다.
 
하지만 서양이 세상을 주도하기 시작한 ‘대분기(Great divergence)’라 불리는 역사적 시점은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를 탄생시킨다. 너무 강한 자와 너무 약한 자의 거래.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는 자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협상. 16세기를 계기로 민족과 국가 사이의 거래는 더는 평등하지 않았고, 유럽의 거대한 무역선은 후추와 도자기와 노예를 원산지로부터 직거래하기 시작한다. 선택된 국가들이 선택한 국가들만의 거래를 허락하기에, 이제 세계화는 더는 인류 보편의 현상이 아닌 선택된 자들만의 게임이 됐다.
 
의화단 운동 당시 독일 잡지에 실린 삽화.

의화단 운동 당시 독일 잡지에 실린 삽화.

더구나 16세기 유럽은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세상이었다. 그것도 광적으로 그랬다. 고대 로마제국의 정신적 후계자라고 주장하던 로마 천주교를 부정한 프로테스탄트 운동. 남아메리카를 정복한 천주교 스페인과는 달리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장악한 반(反)천주교 네덜란드와 영국. 이제 세계화는 더는 단순한 물건의 교환이 아닌 자신이 지지하는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승리를 위한 전략적 도구가 됐다. 덕분에 인도, 중국, 일본을 방문해 천주교의 위대함을 전파한 스페인 출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성자가 되었고, 루벤스의 그림에서 그는 가짜 신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동양인들에게 참된 신과 진실을 설교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진실과 참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연히도, 그리고 너무나 편리하게도 언제나 자신들의 참과 진실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정글북』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년)은 세계인을 문명화하는 것이야말로 백인의 책임이자 부담이라며 호들갑 떨었고, 고마움을 모르는 중국인들은 혼나야 한다며 유럽인은 청나라 의화단운동(1899~1901년)을 무력으로 제압했다.
 
자오팅양

자오팅양

중국사회과학원 학자 자오팅양은 그의 저서 『천하체계』에서 주장한다. 그동안 ‘세계화’는 사실 ‘서양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고.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팍스 아메리카’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패권제도라는 것이다. 더구나 서양 위주의 세계화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기독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서양은 언제나 참과 이단을 분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말했듯 서양의 진리는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이진법을 기반으로 하기에 자오팅양은 서양 위주의 진정한 세계화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가설한다. 영국 vs 독일, 미국 vs 소련, 그리고 이젠 미국 vs 중국. 서양적 프레임은 언제나 적이 필요하기에 모두가 포함된 보편적 세계화는 어렵다는 말이겠다. 자오팅양은 대신 고대 주나라가 실천했다는 ‘천하체계’를 제안한다. 언제나 ‘나와 다른 이’를 구별하는 서양과 달리 중국은 본질적이고 변치 않는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서양식 제국은 언제나 자신과 구별되는 적을 분류하고 파괴하려 하지만, 중국의 천하체계는 모든 국가와 민족을 원천적으로 분류할 수 없는 ‘하나’로 인정하기에 진정한 세계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싸하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기도 하다. 서양인들이 말하던 세계화가 사실 서양화였던 것처럼, ‘천하체계’ 역시 사실은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새로운 패권체계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글북』 키플링 “세계인 문명화, 백인 책임”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세계화에 등을 돌렸고, 트럼프의 출현과 브렉시트는 반세계화의 정치적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화가 지금까지 유지됐던 이유는 결국 하나뿐이겠다. 세계화한 경제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었기에 우리는 여전히 글로벌 세상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은 세계화된 경제시스템의 치명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효율적이던 글로벌 아웃소싱과 공급사슬 망이 역설적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은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경쟁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걱정하고 대비해야 할 진짜 싸움은 기존 서양화를 말하는 미국과 새로운 천하체계를 꿈꾸는 중국 사이의, 둘 다 가짜인 ‘페이크 세계화’의 싸움일 수도 있겠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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