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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팬데믹과 그 이후

중앙일보 2020.04.16 01: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제가 워싱턴 아파트에서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 그러니까 워싱턴 DC 시정부의 그 어느 때보다 삼엄한 자가격리 조치를 준수한 지 한 달이 되어 가는 지금 미국은 확실히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로 말입니다. 뉴욕주만 따로 놓고 봐도 미국을 제외한 그 어느 나라보다 확진자 수가 많습니다. 늑장대응과 진단 시스템의 결함으로 미뤄볼 때 실제 감염자는 그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코로나로 미국인의 일상 엉망돼
효과 거둔 한국 방역에 관심 고조
팬데믹 이후 새 국제공조 위해선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 절실

미국이 전염병에 노출됐음에도 팬데믹과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맞선 미국 주도의 국제공조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미국의 주요 공공기관과 민간기구는 한국 및 다른 주요 국가와 맺은 통화 스와프 계약을 보장하고 기존의 안보 태세와 여러 국가와 쌓은 협력관계로 안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뒤죽박죽된 일상생활과 씨름하는 사이 나라는 시선을 안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쪼그라든 벌이와 사업, 교육의 박탈, 사라진 일자리와 증발한 예금으로 드러난 의료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의 거대한 구멍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는 일일 브리핑으로 당황스러울 만큼 뒤엉켜버린 국가 정책. 이들로 인해 미국인의 삶은 엉망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본능은 협력을 추구하기 보다 자신의 공치사를 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떠넘기는 대상은 중국에서 시작해 세계보건기구(WHO), 주지사들, 뉴스 매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올해 의장국인 미국이 이 질병을 ‘우한 바이러스’로 명기할 것을 끈질기게 주장해 공동성명서 채택이 불발됐습니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등 다수의 전직 세계 지도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공조에 큰 역할을 했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활성화해 이번 위기를 극복하자고 촉구했지만 백악관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한국의 대응입니다. 대부분 어느 정도 미국예외주의에 물들어 있는 미국인들에게는 다른 나라의 경험을 벤치마킹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합니다. 그러므로 미국 언론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방법을 대대적으로 밀착 취재한 것은 매우 예외적입니다.
 
외신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사례를 보도한 것을 보면 주로 한국과 미국 모두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비교 관찰로 시작합니다. 기사를 보면 한국이 효과를 거둔 부분이 바로 미국에서 문제가 된 영역이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속하고 광범위한 검사와 추적, 투명성을 통해 쌓은 신뢰 그리고 전문가와 사실에 의존한 점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BBC 인터뷰와 김우주 고려대 교수가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와 한 인터뷰를 시청했으며 정보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을 반겼습니다. 코로나19의 교훈을 이야기하는 한국 외교관들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웹 세미나’ 생태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난주 혼란 속에 치뤄진 위스콘신주 지방선거로 논쟁이 가열되면서 한국이 어제의 21대 총선에서 어떻게 접근성과 안전성을 보장했는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검사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논의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교착상태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의 협상이 타결된다면 더 많은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를 일시 해고하는 것은 팬데믹 기간 동안 불필요하고 추가적인 고통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동맹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떨어뜨립니다.
 
위기는 변화를 가속시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받아들이면서 업무와 교육 방식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회의·교육 쪽으로 더욱 빠르게 이동한 흐름은 분명해졌습니다. 또 팬데믹과 같은 비전통적인 안보 위협에 더 많은 자원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지역적 불안정과 고통의 원천인 불평등은 어떻습니까. 정치와 세계 질서와 관련해 이번 위기가 전환점이 될지 기존의 기조가 더 강해질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자국중심주의, 무역보호주의, 권위적인 리더십의 유혹이 더 커질까요? 공공의 안녕과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더 많은 사찰이 개인 사생활의 개념을 파괴하고 인권을 무너뜨릴까요? 아니면 한국과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파트너들과 함께 우리의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데 동참하게 될까요? 기후변화 또는 앞으로 닥칠 다른 위기에는 국경이 없다는 인식으로 국제적 참여와 제도를 강화할까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양국 관계는 이번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올 수 있을까요? 제가 답하지 못하는 여러 질문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공식 채널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이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 그로부터 드러날 세계 질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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