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재의 퍼스펙티브] 분석하고 예측하고 대비하면 못 넘을 재앙은 없다

중앙일보 2020.04.16 01:37 종합 24면 지면보기

팬데믹 후 세상에서 살아남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망과 분석은 인간종의 특권이다. 전망이 있어야 대비도 한다.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준비된 국가와 개인만이 재앙을 넘어설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세상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코로나가)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했고,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세계는 코로나 이후(AC:After Corona)와 이전(BC:Before Corona)으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어디 이들뿐이랴. 시대의 현자들이 온갖 격변 시나리오를 쏟아내고 있다. 듣는 장삼이사들은 가슴만 콩닥 인다. 그래 알겠다, 감은 온다. 그런데 어떻게, 언제, 얼마나 대비해야 하나. 답을 알려주는 이는 없다.
 

한국, 사스부터 네 차례 팬데믹 경험
경제·공포·정부 대응 등 역량 갖춰
빅 브러더 시대 인권과 안전의 조화
비접촉 소통 인프라 강화는 숙제

하기야 누가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있으랴.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끼리도 크게 의견이 갈린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대공황보다 큰 충격, 경제가 ‘I’자로 수직 낙하할 것이라고 봤다. 반면 벤 버냉키 전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V’자의 가파른 경기 반등을 예상했다. L자, U자는 물론 나이키 로고 같은 곡선을 전망한 학자도 있다. 심지어 버냉키는 자신의 전망을 2주 만에 수정하기도 했다. 전문가의 예측이 이리 중구난방이니, 아예 자신만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몇 가지 예가 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매일 백화점 상품권 가격을 체크했다. 백화점 인근 점포와 인터넷에선 이른바 ‘깡’을 통해 상품권을 사고파는데,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가 좋아지는 군, 내리면 나빠졌구나고 판단하는 식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만의 신호 포착법으로 소비를 전망해 선제적 금융 대응에 활용했다. 그는 “성과도 꽤 좋았다”고 자평했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수출입 물동량으로 경기를 판단했다고 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물동량이야말로 경기 지표의 현장이다. 물동량이 급변하면 즉각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웠다. 공식 통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늦다. 선제적 대응을 중시했던 노련한 관료의 노하우였던 셈이다.
 
키신저

키신저

#JP모건은 지난 2월 24일 “한국의 코로나19 감염률은 3월 20일에 정점을 찍고, 최대 1만명이 감염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체 분석 틀을 사용했고 지금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당시 정부는 “JP 모건의 판단을 신뢰하기는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며칠 시차가 있긴 하지만 JP 모건의 전망이 맞았다. 한국 정부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정확한 숫자야 신의 영역이겠지만 최선~최악의 시나리오는 인간과 과학의 영역이다. 선제적 대응을 위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대로 보고됐더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4일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라며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란 섣부른 전망을 안 해도 됐을 것이다.
 
정부는 늘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팬데믹은 더 그렇다. 낙관과 비관을 모두 아우르는 건 필수다. 자기 분야를 매의 눈처럼 쏘아보는 전문가의 통찰은 물론 그런 통찰을 종합해 큰 미래를 그릴 또 다른 전문가도 필요하다. 중앙일보가 세계적 미래학자 짐 데이터 하와이대 명예교수를 소환한 건 그래서다. 데이터 교수는 1. 대탈출(The Great Digression) 2. 봉인해제(The Great Unwinding) 3. 세계적 연대(The Great Binding) 4. 대축복(The Great Blessing) 의 네 가지 미래를 제시했다. 최악~최선을 담은 시나리오다. 그는 “어떤 미래가 펼쳐지든지 (그것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4월 14일 자 27면〉

관련기사

 
프리드먼

프리드먼

데이터 교수의 큰 그림은 그러나 ‘두루뭉술’하다. “미 2분기 GDP 30% 감소”(재닛 옐런 전 fed 의장), “중국발 IT 전체주의의 확산”(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처럼 콕 집어 찌르는 맛은 없다. 맞춤형 대안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그의 제자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미래학)에게 도움을 청했다. 국회미래연구원도 본격 연구를 검토 중이다. 결과물은 빨라야 하반기 이후에나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선제적 대응을 위한 선제적 분석을 부탁했다. 다소 거칠어도 좋다. 박 위원은 동료 김유빈 위원(과학기술정책학)과 함께 2002년 사스부터 신종플루와 메르스, 올해 코로나까지 한국을 강타한 4번의 팬데믹을 분석했다. 키워드 문헌검색과 유튜브 동영상 검색을 활용했다.
 
4번의 팬데믹에 공통으로 등장한 키워드는 ①경제적 충격 ②환경 파괴 ③심리적 공포 ④정부 대응 능력이었다.
 
루비니

루비니

①경제적 충격은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사업장 폐쇄로 나타났다. 서비스업의 충격이 특히 컸지만, 바이오산업은 상대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받았다. 지역사회보다는 대도시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경제적 대응에 산업별, 지역별, 도시별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②환경파괴가 새 전염병 발생을 부추겼다. 한 문헌에 따르면 1940~2004년까지 세계 감염병 355건 중 60.3%가 동물에서 유래된 인수전염병이었다. 이 중 71.8%는 야생동물에서 왔다. 인수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친환경 도시화가 필요하다.
 
벤 버냉키

벤 버냉키

③팬데믹의 높은 전염성과 치사율은 공포를 확산시킨다. 특히 공공보건 노동자들의 심리적 고통이 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④식량 부족 해결, 의료진과 병상의 확보, 진단 장비나 마스크 등 의료물품의 분배 등이 정부 실력을 재는 잣대가 된다. 실패하면 정부 무용론이 나온다. 혁신적 상시 위기관리 체제를 갖춰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역사회의 공조, 시민사회·비정부기구와의 협력, 기업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짐 데이터

짐 데이터

사스~메르스 때는 잘 안 보였지만 코로나 팬데믹 때 새로 등장한 키워드도 있다. 첫째, 국가 차원의 국민 감시. 빅 브러더의 세상이 성큼 다가왔다. 공공 안전과 개인 자유 간 조화를 위한 합의된 원칙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둘째, 시민들의 SNS 정치. 권위주의 정부의 정보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생존을 위한 개인의 상태와 증상, 치료 정보 소통을 막을 수 없게 된다. SNS와 시민 저널리스트의 영향력이 커진다. 투명한 정부만이 생존할 수 있다. 셋째, 비대면 소통의 확산. 곧 5G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홀로그램과 가상현실을 통해 강의나 업무, 실습까지 비접촉 소통이 일상화할 것이다.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통신 인프라와 가상 현실 기술을 끌어올리는 데 국가적 역량이 동원돼야 한다.
 
예고된 재앙은 재앙이 아니다. 예고된 위기가 그렇듯이. 분석하고 예측하고 대비하면 넘어설 수 있다. 국가는 국가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누군가는 ‘느린 생각’을 해야할 때다”
김동원

김동원

김동원(사진) 전 고려대 초빙교수는 팬데믹 이후 세계를 다섯개 키워드로 압축했다.
 
①사회적 거리두기는 특권, 그러나 지속할 것=사회적 거리두기는 누구나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부자, 백인, 주류 사회의 특권”이라고 했다. 가난, 흑인, 비주류엔 역차별이자 소외일 수 있다.
 
②세계화의 퇴조=글로벌 리더십의 지형이 크게 바뀔 것이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힘을 잃고 중국의 IT 전체주의가 극성을 부릴 수 있다.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도 나빠질 것이다. 한국엔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선택지가 들이 밀어질 수 있다. 중국식이냐 미국식이냐의 선택지다.
 
③포퓰리즘의 극성=편 가르기가 심해질 것이다. 벌써 정치권에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국민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거나 기업 내부유보금을 전 국민에 나눠주자는 말이 나온다. 가난한 자가 부자의 돈을 뺏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무너질 수 있다.
 
④디지털화의 가속=마스크 분배 등에서 나타났듯, 디지털화한 국민이 앱을 만들고 서로 소통해 각자도생할 것이다. 디지털에서 소외된 노년층이 소외되는 디지털 디바이드도 가속할 것이다.
 
⑤세계 경제 장기 침체=팬데믹 위기 →글로벌 경기 침체→금융 위기로 전이될 것이다. 무역·소비·투자가 줄면서 세계 경제 성장의 궤도가 급격하게 하향할 것이다.
 
김 전 교수는 “이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느린 생각(slow thinking)’”이라고 했다. “금리 낮추고 돈 풀고 즉각 대응하는 것은 ‘빠른 생각(fast thinking)’이다. 코로나 후유증 치유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다. 돈 100만원 긴급재난지원금이 끝이 아니다. 긴 안목, 느린 생각의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짧게 보고 당장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망국의 지름길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