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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진짜 군인’ 전인범의 좌절

중앙일보 2020.04.16 01:33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3년 전 대선 후보 시절 ‘진짜 군인’으로 불려온 전인범 장군을 영입했다. 특전사 출신인 문재인이 특전사 사령관 출신의 전인범을 영입했다는 뉴스로 보수세력의 색깔론 공세를 차단하고 ‘안보’ 능력에서 점수를 따려는 의도였다. 1977년 육사 37기로 입학해 39년간 군복을 입은 전인범은 복무 중 역대 최다 훈장(11개)을 받을 만큼 무공이 높고, 미국이 외국군에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공로훈장을 세 번이나 받은 한미동맹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십고초려 끝 영입해 색깔론 차단
집권 뒤 안보 소홀한 모습 보이자
전인범, 3년 만에 대통령 곁 떠나

문재인은 이런 전인범을 10번이나 만나며 공을 들였다. 전인범이 무슨 쓴소리를 해도 납작 엎드리며 “도와 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전인범이 문재인 손을 들어주긴 쉽지 않았다. 주변의 군 선후배와 친구들이 “어떻게 거기로 가느냐”며 분노를 터뜨렸다. 전인범은 고민 끝에 친분을 쌓아온 미군과 국무부 인사들에게 “문재인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도와주라”였다. “당신이 (한·미) 중간에서 문재인을 완화(mitigate)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인범은 작심하고 문재인을 만나 “나도 나이가 60이다. 세 가지만 들어달라”고 했다. “첫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가 중요하다. 미국과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기면 안 된다. 둘째,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하지 말라. 셋째, 전시작전권 전환을 임기 중에 밀어붙이지 말라”
 
그러자 문재인은 “큰 틀에서 장군의 말씀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은 전인범은 마침내 문재인 지지를 선언했다. 2017년 2월 4일 경희대에서 열린 ‘문재인 북 콘서트’에 초대받은 전인범은 군 복무 시절 전방에서 쓰던 랜턴을 들고 갔다. 문재인에게 랜턴을 선물하며 “불을 밝혀 인재를 찾으시라. 그리고 집권하면 (반대파를 포함해) 모든 국민을 포용하라. 그러면 위대한 대통령 될 수 있다”고 진언했다. 문재인이 동의하자 전인범은 마이크를 잡고 콘서트장에 모인 문재인 지지자 2000명 앞에서 외쳤다. “나는 문재인이가 빨갱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군인스러운 전인범의 선언으로 문재인의 ‘진짜 군인’ 영입 작전은 완수됐다. 이 사실이 연일 톱뉴스로 보도되며 문재인은 약점으로 지적돼온 ‘안보 취약’ 부담을 해소하고 석 달 뒤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전인범을 ‘우리 편’으로 믿어온 보수진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전인범이 문재인을 떠났다. 문재인이 무조건 싫어서 떠난 것은 아니다. 전인범은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9.19 남북 군사합의의 가치는 높게 평가한다. 합의 타결 이래 1년 반 동안 남북 간 충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동맹관리나 보훈 군인 예우에서 잘한 걸 찾아보기 어렵다”며 점수를 박하게 준다. 그런데도 전인범이 문재인을 떠난 이유는 분명하다. 집권 전 자신에게 해준 약속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에 욕심이 앞서 유엔사를 비롯한 미군을 환대하지 않고 육사의 사기를 지나치게 꺾었으며, 국군을 ‘훈련 안 하는 군대’로 만들어 쓸모없는 조직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지난해 11월 삼척 앞바다로 내려온 북한 선원 2명을 강제북송한 조치다. 그들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건 간에 탈북한 이상 우리 국민인데 죄를 물어도 우리 법정에서 물어야지 북한으로 돌려보내 참혹한 최후를 맞게 한 것은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총선 전날인 그저께 북한은 강원 앞바다에 사거리 150km 순항미사일을 여러 발 쏘고 전투기를 출격시켜 공대지 미사일도 발사했다. 그런데도 합참은 오전 7시에 터진 긴급 상황을 오후 2시가 돼서야 공개했고 청와대에선 오전 10시 국무회의가 열렸음에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문 대통령도 NSC(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기는커녕 유감 표현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신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미리 신청받으라”고  강조했다. 이런 문 대통령과 청와대, 군을 보고 전인범은 “역시 내 결정이 옳았다”고 되뇌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십고초려 끝에 데려온 ‘진짜 군인’의 문제 제기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3년전 ‘전인범 영입’소식을 듣고 문 대통령의 안보관에 믿음을 품어 표를 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 정권의 어깨를 짓눌러온 총선도 마무리된 지금이다. 전인범을 데려오기 위해 쏟은 정성의 10%, 아니 1%만이라도 안보에 할애해, 시도 때도 없는 북한의 도발에 불안해하는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기 바란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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