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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정의감과 애국심, 독점하지 말라

중앙일보 2020.04.16 01:29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가영 사회1팀장

이가영 사회1팀장

승자와 패자가 결정났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아쉬움에 분루를 삼킬 게다. 표를 향해 사투를 벌이던 이들은 이제 금배지를 달고, 혹은 민가슴으로 각자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괴상한 선거였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선거운동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상황의 위중함 때문인지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선거 이슈를 삼켰다. 정당과 정책, 후보자 모두 실종됐다. 조주빈과 n번방 사건도 영향을 줬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유권자들은 최다 우편물과 최장의 투표용지를 받아들어야 했다. 역대 최악의 깜깜이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선거의 전선은 매우 다양해졌다. 선거 사령부가 약해져서인지 소규모 국지전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온갖 막말의 난무, 각 당과 진영이 보여준 특이한 내전 양상은 과거엔 없던 모습이다. 여기에 지금껏 아예 보지 못한 새 전선이 등장했으니 ‘검찰총장 윤석열 전선’이다. 과거 선거에서 검찰과 총장은 후보자들의 금기어였다. 압수수색을 받는다거나 검찰이 관심을 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선거의 전망은 매우 어두워졌다.
 
노트북을 열며 4/16

노트북을 열며 4/16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상당수 친여권 후보들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지킴이를 자저차며 윤 총장 때리기에 나섰다. 장모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쏟아진다 싶더니 총선 뒤 공수처가 들어서면 윤 총장이 기소될 거라고 했다. 정치인이 대놓고 검찰총장을 협박하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폐청산 수사로 고통을 겪었던 미래통합당은 윤 총장을 지켜내겠다는 선거운동을 펼쳤다.
 
공격의 양상은 협박에 기반한 조롱과 비아냥이다. 정치인의 품격?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언행을 서슴지 않는 근거가 과연 뭘까. 바로 자신들만이 정의롭고 애국적이라고 믿는, ‘독점 의식’이라고 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와 궤를 같이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자 그 정부가 일 잘한다고 임명한 총장을 불의라 몰아붙이고, 급기야 범죄자 취급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11월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YS의 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며 “YS가 ‘박정희씨는 애국심을 독점하지 말라’고 한 얘기도 생각난다”고 떠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며 필자가 가장 절실히 깨달은 부분도 타인의 애국심과 정의감을 의심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혹시 지금 여권을 비롯한 정치권에 박 대통령 부녀처럼 애국심과 정의감을 독점하려는 세력은 없는가. 총선 이후 사회 통합을 책임져야 할 이들이 더욱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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