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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택근무하며 아이 둘 돌보는 건 터무니없었다

중앙일보 2020.04.16 01:27 종합 29면 지면보기
장재원 이화여대 이화미디어센터 연구원

장재원 이화여대 이화미디어센터 연구원

‘팀장님 내일 중엥ㄹㅗㅜ;ㅎ엏ㅂ’. 하마터면 이런 메시지를 거래업체 직원에게 보낼 뻔했다.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잠시 무릎에 앉힌 사이 둘째 아들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덮친 것이다. 황급히 노트북을 덮자 아이는 몸을 뻗대며 자지러졌다. 겨우 달래 거실로 보낸 것도 잠시, 장난감을 두고 형과 싸우다 또 운다. 재택근무 30분 만에 깨달았다. 집에서 일하며 영유아 둘을 돌보는 건 터무니없는 발상이었다.
 

코로나, 구조적 돌봄 헛점 극대화
탈진 상태된 육아 현장 개선해야

만으로 5세와 2세 남아를 둔 맞벌이 가정의 엄마다. 우리 집도 코로나19로 온 가족을 동원해 돌봄 공백을 버티는 수많은 가정 중 하나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지만, 집에선 업무 처리가 거의 불가능한 사정 때문에 사무실로 나간다. 남은 연차휴가는 올해 안에 혹시 아이가 아플 때를 대비하기에도 넉넉하지 않다. 코로나19로 비상이 걸린 남편 직장에선 재택근무는 언감생심이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긴급보육으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다. 올해 처음 입소한 둘째 아이는 적응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같은 반 원아가 10명인데 등원 첫 주엔 우리 애까지 2명만 나왔다. 적응 기간엔 아이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결국엔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연로하신 시부모님은 하원부터 저녁까지 하루 대여섯 시간 손목보호대를 끼고 두 아이를 돌보신다.
 
우리 집 사정은 나은 편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조부모가 계시고, 엄마인 내가 오후 5시면 퇴근하고, 여차하면 재택근무 신청도 가능하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있는 맞벌이 가정이 더 많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더는 양가 부모님께 기대기 어렵거나, 직장 내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엔 고충이 극심하다.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면서 맞벌이 가정, 특히 워킹맘들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초등 1학년 딸과 5세 아들을 둔 지인은 친정어머니 도움을 받는다. 그간 남편과 둘이 연차휴가와 돌봄 휴가로 돌려막듯 지내다 아예 아이들을 친정에 맡긴 지 2주째다.
 
하지만 온라인 개학을 하면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친정엄마가 딸의 수업을 챙겨줄 수 있을지, 누나가 수업을 시청하는 동안 가만 앉아있을 리 없는 아들은 또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안 그래도 힘들다고 호소하는 친정엄마께 추가 부탁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긴급돌봄을 보내자니 입학식도 치르지 못한 딸을 낯선 학교에 보내기란 쉽지 않다. 오후 6시면 돌봄 교실에 남는 애들이 없다는데 퇴근이 6시다. 지인은 "퇴사가 최선인가 싶다”고 했다.
 
실제 육아 카페에는 퇴사를 고민하거나 이미 사표를 쓴 워킹맘의 글이 속속 올라온다. 그간 부단히 애써 온 워킹맘들이 무력한 상황과 누적된 스트레스로 백기를 든다. 오해는 마시라. 위험을 무릅쓰고 등교를 강행해야 한단 얘기는 아니다. 지금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 모두가 만족할 방안이란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코로나19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우리 보육 시스템의 민낯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일과 양육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맞벌이 가정은 원래도 변수에 취약하다. 노년의 조부모를 ‘갈아 넣거나’,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로 돌리며 돌봄을 해결해 오던 구조적인 허점이 코로나19라는 핵폭탄급 변수를 만나 극대화돼 떠올랐을 뿐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선 돌봄의 풍경도 달라져야 한다. 아이는 늦은 저녁엔 기관이 아닌 가정의 보살핌을 받고, 조부모는 ‘황혼 육아’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 엄마는 경력 단절의 두려움 없이 일하고, 양육의 고됨과 기쁨을 누릴 기회는 아빠에게도 더 주어져야 한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라 했다. 이번 사태가 탈진 상태에 이른 육아 현장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장재원 이화여대 이화미디어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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