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18)
아버지랑 살며 절실히 느끼는 것은 형제자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것이다.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집안 대소사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 말도 마음도 잘 통하고, 기본적으로 동생을 안쓰러워하는 언니들이니 더욱 힘이 된다. 다만 서울과 대전, 부산, 강릉에 떨어져 살고 있어 언젠가 가까이 모여 살면 좋겠다 하는 소망이 있을 뿐 ‘언니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아버지 병원 진료 시간과 사무실 회의 시간이 겹쳐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전에 사는 언니1이 흔쾌히 상경했다. 말도 마음도 잘 통하고, 기본적으로 동생을 안쓰러워하는 언니들이니 더욱 힘이 된다. [사진 piqsels]](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4/15/d17eede8-f12f-48b3-b850-d6c748025d67.jpg)
아버지 병원 진료 시간과 사무실 회의 시간이 겹쳐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전에 사는 언니1이 흔쾌히 상경했다. 말도 마음도 잘 통하고, 기본적으로 동생을 안쓰러워하는 언니들이니 더욱 힘이 된다. [사진 piqsels]
회의 마치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언니1의 보고사항이 깨알같이 와 있었다. 대전에서 몇 시에 도착했으며, 아버지를 차에 모시고 병원에 도착해 접수한 뒤 선생님을 만나는 과정, 아버지 심리상태와 검사 후 기분, 심지어 피검사 때 주삿바늘을 몇 번 찔렀다는 것까지, 궁금해할 동생에게 세세하게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결론적으로 언니1은 동생이 당부한 미션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것은 물론, 병원 오가는 길 벚꽃길 드라이브로 꽃놀이도 시켜드렸다. 게다가 김치와 밑반찬, 간식으로 먹을 홈메이드 쿠키와 약식까지 대전에서 챙겨와 부실한 우리 집 냉장고에 저장해 놓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 강릉 사는 언니2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새집 청소하러 온 김에 집에서 저녁 먹고 가겠다고. (언니 2는 곧 과천으로 이사 올 예정이다) 아버지는 낮에 큰딸이 다녀간 데 이어 둘째까지 와서 함께 저녁을 먹겠다고 하니 병원에서 힘들었던 일은 금방 다 잊으시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늘 혼자 혹은 둘이던 식탁에 언니2가 함께 하니 한 명 늘어났을 뿐인데도 집이 꽉 찬 느낌이었다. 식탁 위엔 언니 1이 담아온 신선한 열무김치와 밑반찬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 준 집 밥을 먹는 느낌이랄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갑자기 언니를 부른 것인데, 혼자 무리하지 않고 언니에게 도움 청하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결과가 좋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언니2에게 “이렇게 같이 밥 먹고 가니 얼마나 좋으냐. 반찬도 다 맛있구나” 하며 만족해하셨다.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저희는 어쩌다 한 번이지만 막내는 매일, 매끼 하고 있어요.” 침묵이 흘렀다. 얼마 전 ‘지난 10년간 유지해 온 효녀 심청 타이틀이 (언니 때문에) 위태롭다’고 썼던 글을 마음에 담아 뒀던 모양이다.
[더,오래]에 연재를 시작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내가 무심코 쓴 글 한 줄, 단어 하나에 파문이 생긴다. 새 글이 공개될 때마다 언니들은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지만, 각자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도 다를 수 있다. 내가 신경 쓰는 부분도 혹여 다른 가족 구성원 보기에 불편한 부분은 없는가다. 실명 대신 필명 ‘푸르미’를 쓰는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고. 이번 호에선 쌍방의 시선을 함께 담아보고자 언니1의 4월 1일 자 일기를 이어 소개한다.
![아버지와 함께 매주 4장씩 구매한 마스크의 행방을 대전에 사는 언니의 일기를 보고 알았다. 시골에선 마스크 사기 힘들지 않냐며 정확하게 반반 나눠 언니1과 언니2의 손에 들려 보내셨단다. [사진 pxhere]](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4/15/a12f8905-3478-4a8c-81ef-0cda7c38fd29.jpg)
아버지와 함께 매주 4장씩 구매한 마스크의 행방을 대전에 사는 언니의 일기를 보고 알았다. 시골에선 마스크 사기 힘들지 않냐며 정확하게 반반 나눠 언니1과 언니2의 손에 들려 보내셨단다. [사진 pxhere]
바쁜 김 자매 4호를 대신해 아빠 모시고 병원 검진을 가기 위해 친정에 갔다. 아빠는 집에 들어서는 나를 훑어보시고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다며 나무라신다. 밖은 벌써 꽃이 만발한 봄이 건만 지천명에 듣는 잔소리가 참 좋다. 집에서 준비해 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으려는데 급하게 아빠가 말씀하신다. “마스크, 빨리 챙겨라.” 돌아보니 포장도 크기도 각각인 마스크가 여러 개. 시골에는 마스크도 구하기 어렵지 않으냐 하시며, (아빠, 저도 따뜻한 물 나오는 아파트에 살아요^^) 몇 날 며칠 두 어장씩 모았을 마스크를 챙겨주신다.
“아, 아빠, 마스크라니요!” 꽤 오랫동안 보길도 집을 달라고 졸랐으나 가서 살지도 않을 집이 왜 필요하냐며 사촌 언니에게 주어 버리신 아빠가 그 귀하디귀한 마스크를 내게 주시다니 순간 눈물이 났다.
병원 검사를 마치고 아침을 금식한 아빠를 위해 불고기를 사드렸다. 코로나로 지난 3주간 집에서 외출도 못 하고 계셨던 터라 입맛이 ‘역사적’으로 떨어졌다던 아빠는 그릇 바닥의 국물까지 싹싹 다 긁어 드셨다. 금식 탓인지, 늘 홀로 드시던 점심에 밥 동무가 생긴 덕분에 몸과 마음을 채운 아빠는 이제야 웃으신다.
추신: 마스크 행방에 대해 언니 일기를 보고 알았다. 매주 4장씩 구매하지만, 아버지가 거의 외출을 안 하셔서 여유가 있었는데, ‘시골에선 마스크 사기 힘들지?’ 하시며 여유분을 정확하게 반반 나눠 언니1과 언니2의 손에 들려 보내셨다 한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