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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치솟는 금값에 어린 불길한 징조

중앙일보 2020.04.15 00:38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두 사람을 똑같이 만들어 버렸다. 전쟁 상황이 아닌데도 전시(戰時)보다 더 많은 재정을 쏟아붓고 아주 공격적인 금융 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주머니에 돈도 듬뿍 꽂아준다. 온갖 극약처방을 총동원하는 게 공통분모다.
 

코로나 사태에 온갖 극약처방 동원
금밖에 못믿는 불안한 세상 우려
여야, 재난지원금 매몰에서 벗어나
국제 경쟁력 지킬 방도를 고민해야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11조원이 넘는 1차 추가경정예산에 이어 내일부터 9조원이 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2차 추경을 진행한다. 올 하반기에는 세수 부족을 메꾸는 세입경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후진국 시절에나 있던 3차 추경이 48년 만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최전방 공격수로 발 벗고 나섰다. ‘중앙은행=최후의 대부자’가 아니라 아예 ‘중앙은행=최초의 대부자’로 변신했다. Fed가 투자부적격 기업들의 회사채(정크본드)까지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극단적 처방에도 당장은 찬양하는 목소리 일색이다. 코로나 악재가 언제, 어디까지 진행될지 모르는 만큼 기대에 못 미쳐 망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잉대응이 낫다는 것이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자칫 시장을 왜곡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부를 것이라는 비판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플레나 재정적자를 두려워 말고 더 공격적으로 나서라”고 응원한다.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시장의 충격과 불안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는 지금 금융·재정 정책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중이다. 재정은 거의 국가 부도가 나기 직전까지 최대한 쏟아붓고 있다. 재정 건전성이라는 잣대는 증발돼 버렸다. 금융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마이너스 금리와 무제한 통화 살포까지 감행할 태세다. 그러나 세계 주요 언론들은 마지막 치명적인 부작용은 잊지 않고 있다. 어느 순간 인플레가 덮치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부채 상환이 불가능해지면 끔찍한 재앙을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지 분명한 건 정부·기업·가계 모두 향후 엄청난 빚에 시달릴 것(월스트리트 저널)”이라거나 “어느 순간 쏟아부은 달러의 신뢰성에 의문이 생기면 달러가치 급락과 초(超)인플레이션을 부를 수 있다(블룸버그 통신)”고 경고한다.
 
물론 달러의 기축 통화 위상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빅 테크 등 여전히 막강한 경제력과 압도적인 군사력의 세계 최강국이기 때문이다. 죽을 쑤고 있는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는 현실적으로 달러화를 위협할 대안이나 경쟁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극약처방에 따른 불길한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가지 징조가 뚜렷해진다.
 
우선, 엄청난 돈 폭탄에 중독되었던 시장에 내성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4일 미국이 1조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키자 다우지수는 6.46% 폭등했다. 하지만 보름 뒤 미 Fed가 2조3000억 달러의 유동성을 풀었으나 다우지수는 1% 남짓 오르는 데 그쳤다. 한때 재정 살포의 모르핀과 금융 완화라는 스테로이드 주사에 급반등하던 금융시장에 내성이 생긴 때문이다.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시장 반응이 시들해진 것이다.
 
또 하나의 불길한 징조는 국제 금값이 치솟는 현상. 어제는 온스당 1744.80달러로 6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말 저점 대비 20% 가까이 뛰었다. 특히 Fed가 돈을 왕창 풀면서 “믿을 건 금밖에 없다”는 심리가 번지고 있다. 달러화의 신뢰에 대한 의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면서 금값이 치솟은 것이다.
 
이뿐 아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미래도 뒤흔들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초저금리는 일상적 풍경이 될 것이다. 가계부채와 정부부채가 엄청나게 팽창한 상황에서 쉽사리 금리를 올리기도 어렵다. 문제는 저금리가 지속되면 노후의 이자소득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연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저금리는 연금 수익률을 끌어내려 연금마저 망가뜨리게 된다. 불안한 미래다.
 
여기에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풀린 엄청난 유동성이 채 회수되기도 전에 코로나 사태로 더 많은 유동성이 살포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사회 양극화는 피하기 어렵다. 저금리와 돈 살포는 자산 거품이라는 부작용을 부르기 마련이다. 언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
 
이제 총선이 끝나면 코로나에 묻혔던 경제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 이미 지난달 구직급여 신청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근 주요 경제 예측기관들은 올해 성장률을 평균 -0.9%로 전망해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역성장할 것이라는 경보음이 요란하다. 여기에다 자가 격리로 국제 교역이 위축될 경우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에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번 총선에선 어떻게 국제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 코로나 역풍을 뚫고 나갈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로지 재난 지원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뿌릴 것인지를 놓고 입씨름만 벌였다. 우리가 총선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전 세계적으로 금밖에 믿을 게 없다는 불길한 징조가 확산되고 있다. 내일부터 경제가 정말 큰 일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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