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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그냥 가져가세요”…마트선 비싼 감자 무료 나눠준 농민, 왜?

중앙일보 2020.04.14 11:57
지난 13일 자신의 감자밭 인근에 1t가량의 감자를 쌓아두고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한 최승욱(54)씨. 박진호 기자

지난 13일 자신의 감자밭 인근에 1t가량의 감자를 쌓아두고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한 최승욱(54)씨. 박진호 기자

 
“판로가 막혀 저온저장고에 쌓여있던 감자를 필요한 사람들 가져가라고 내놓은 건데….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지 몰랐습니다.” 강원 춘천시 우두동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최승욱(54)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감자밭 인근에 1t가량의 감자를 쌓아뒀다. 

햇감자 공급 늘어 서울 경매시장서 "보내지 말라"
일부 큰 감자 식당 돌며 1만원(20㎏)에 판매하기도

 
 최씨가 쌓아둔 감자는 ‘특’ 이하 상품으로 과거엔 경매시장에서 20㎏ 한 상자에 1만~1만5000원 선에서 거래됐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판로가 막혀 특 이하 저장감자는 아예 경매 자체가 안 되고 있다.
 
 최씨는 “매년 팔고 남은 감자를 해당 장소에 놔두면 주민들이 가져갔던 게 생각나 이번에도 놔둔 것”이라며 “늦은 밤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와 감자를 들고 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새벽에도 사람들 몰려 감자 가져가 

13일 오후 강원 춘천시 우두동에서 시민들이 한 농가가 내다놓은 감자를 주워가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강원 춘천시 우두동에서 시민들이 한 농가가 내다놓은 감자를 주워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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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최씨가 쌓아 둔 감자는 하룻밤 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4일 오전 감자가 쌓여 있던 곳에는 조림할 때 쓰는 작은 감자만 일부 남아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신모(71·춘천시 효자동)씨는“감자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기에 30분 넘게 자전거를 타고 왔다”며 “자루에 담은 작은 감자 2㎏은 집에서 가족과 감자전을 해 먹을 생각이다. 어려운 시기 감자를 무료로 나눠준 농민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감자는 크기와 모양에 따라 ‘왕왕-왕특-특-상-중-조림’ 등으로 등급이 나뉜다. 통상 왕특을 시세의 기준으로 삼는데 한 개에 무게로 따지면 180~250g 또는 200~280g 정도다. 저장비와 운송비·작업비·박스값·수수료 등을 통틀어 20㎏ 한 박스 기준 평균 단가가 1만8000~2만원은 나와야 손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달 들어 전북지역에서 하우스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저장감자 판매가 더 어려워졌다. 현재 서울 가락동시장에 나오는 감자의 70%는 햇감자다.

서울 가락동시장 70% 햇감자

강원 춘천시 우두동 길가에 최승욱(54)씨가 내놓은 감자 1t이 하룻밤 새 사라진 모습 . 박진호 기자

강원 춘천시 우두동 길가에 최승욱(54)씨가 내놓은 감자 1t이 하룻밤 새 사라진 모습 . 박진호 기자

 
 이용호 한국청과 경매사는 “감자의 경우 박스값과 운송비 등으로 한 박스당 6000~7000원이 들어 평균 단가가 2만원 정도 돼야 조금이라도 남는데 올해는 괜찮은 감자도 평균 단가가 1만2000~1만5000원에 불과하다”며 “더욱이 4월 들어 전북과 경북 등에서 햇감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등급이 낮은 저장감자는 경매가 아예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강원지원이 최근 강원지역 친환경 농산물 재배 농가를 돕기 위해 현황 파악을 한 결과 친환경인증 농산물 재고량이 322t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71%에 달하는 230t이 감자다. 
 
 최씨는 “열심히 농사지어 키운 감자인데 최근 햇감자가 나오면서 저장감자 가격이 너무 내려가 경매시장에서 아예 보내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남은 감자는 직접 주변 식당을 돌며 1만원(20㎏ 한 상자)에 팔고 있다. 다행히 오늘은 20상자를 팔았다”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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