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독] 폰 안되는데 "꼭 연락"···이 말 믿고 입국시킨 검역소

중앙일보 2020.04.14 05:00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해외입국자에 대한 검역을 강화한 가운데 지난달 23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 여객기를 타고 입국한 승객들이 격리시설로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뉴시스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해외입국자에 대한 검역을 강화한 가운데 지난달 23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 여객기를 타고 입국한 승객들이 격리시설로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뉴시스

자가격리 중 무단이탈로 구속 위기에 놓인 미국 입국자 A씨(68)가 주소와 연락처를 허위 작성하고 어떻게 공항 검역대를 통과했을까. 보건 당국이 해외 입국자가 거주지로 갈 때까지 빈틈없이 관리한다고 홍보해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격리 위반 영장 청구된 60대 남성 입국과정 추적해보니

A씨는 지난 10일 미국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후 서울 송파구에서 이틀간 두 차례 자가격리를 위반해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13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자가격리 위반혐의로 처음 영장이 청구됐다.    
중앙일보는 A씨의 입국에서 체포까지 과정을 추적했다. 
 
지난 10일 미국에서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온 A씨는 특별입국절차를 따랐다. 공항 검역대에서 주소와 연락처를 써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져 모든 해외 입국자는 국내 체류지 주소와 수신 가능한 연락처를 제출해야 해서다. 검역소는 그 자리에서 입국자 본인의 연락처가 맞는지 확인한다. 수신 가능한 연락처가 없으면 가족이나 지인 연락처로 대신할 수 있다. 이때 역시 검역소 직원이 가족이나 지인과 통화해 확인한다. 
 
하지만 A씨에게 이런 매뉴얼이 통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검역소가 이 절차를 시행하려 했으나 A씨의 완강한 거부에 부닥쳤고, 전화번호 확인 없이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011’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써냈다. 하지만 검역소 직원이 이 번호로 전화했더니 '정지된 번호'라고 나왔다.  
정부는 지난 1일 해외 입국자에 대해 14일 동안 자가격리와 안전보호 앱 설치를 의무화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1일 해외 입국자에 대해 14일 동안 자가격리와 안전보호 앱 설치를 의무화했다. 연합뉴스

 

적어낸 전화번호 정지됐다 나와 

 
검역소 측이 A씨에게 지인 연락처를 요구했다. 하지만 A씨가 "왜 그런 걸 요구하느냐"며 완강히 거부했다. 검역소 직원에게 고함을 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A씨는 “공항에서 나가면 유심칩을 끼워서 전화를 재개통해 꼭 연락할테니 보내달라”고 말했다. 검역소 직원은 밀려드는 입국자 처리에 바빠 그냥 통과시켰다. 중대본 관계자는 “연락처가 불분명하면 입국을 불허하거나 정부 격리시설 등에 보내야 했지만 A씨가 난동을 부리자 검역소에서 믿어보자는 생각으로 보내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외국인이면 입국 불허 요청서를 법무부에 보내 입국을 불허하고 강제 추방하면 되지만 내국인은 그럴 수 없다”며 “내국인은 여권이 없더라도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입국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운영 시설에 격리하면 자비 부담이 140만원인데 그것도 본인 동의가 필요하다”며 “특별입국절차를 만들어놨지만 본인이 거부하면 뾰족한 방도가 없다”고 덧붙였다. 
 
송파구로 들어온 A씨는 약속과 달리 전화를 개통하지 않았고 검역소에 연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까지 사우나 등을 다니다 지자체와 경찰에 적발됐다. 
 
송파구는 11일 오후 2시쯤 자가격리자가 이탈했다는 A씨 지인의 신고를 받았다. 경찰이 출동해 입국 관련 서류 등으로 A씨가 해외입국자임을 확인할 때까지 송파구는 그의 존재를 몰랐다. 송파구 측은 “서울시로부터 A씨가 해외입국자라는 사실을 통보받은 것은 11일 오후 9시쯤”이라고 밝혔다. A씨의 입국 사실이 송파구에 제때 통보되지 않고 늦게 간 것이다. 
 

하루 지나서야 입국 통보 받은 지자체  

 
방역당국은 A씨가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을 설치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해명했다. 해외입국자가 공항에서 자가격리 앱을 다운 받아 주소지를 입력하면 곧바로 해당 지자체 담당자가 알 수 있다. 하지만 2G 폰이라 앱을 설치할 수 없거나 A씨처럼 휴대전화가 없는 경우가 문제다. 해외 입국자 중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앱 설치율이 68%에 불과하다. 이럴 때는 지인 전화번호를 받아서 확인하는데, A씨처럼 나올 경우 허점이 생긴다. 
 
앱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광역지자체 담당자가 직접 법무부 시스템에 접속해 기초자치단체에 명단을 통보하는데, 여기에 시간이 걸린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청 담당자가 A씨에 대한 해외입국 정보를 11일 오후 9시쯤 송파구에 전달했다”며 “하루 4번 자치구에 해외입국자 명단을 보내고 있지만 이날은 토요일이라 좀 늦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해외입국자 명단을 2시간마다 한 번씩 자치구에 통보하기로 했다. 또 서울시는 법무부가 입국 심사 시 주소지와 연락처의 진위를 확인해달라고 1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건의했다.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 이 청장은 13일 종로구 내자동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감염 위험성이 있는지, 다수인을 접촉했는지, 반복적으로 이탈했는지 등을 따져 자가격리 이탈자에 대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 이 청장은 13일 종로구 내자동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감염 위험성이 있는지, 다수인을 접촉했는지, 반복적으로 이탈했는지 등을 따져 자가격리 이탈자에 대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검찰 이탈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13일 경찰은 자가격리 조치를 2차례 어기고 사우나·음식점을 돌아다닌 A씨에 대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서울 성동경찰서 역시 자가격리 조치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30대 여성 B씨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B씨는 확진자의 접촉자로 11일까지 자가격리 해야 하는데도 10일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외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