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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의 이코노믹스] 대기업 갑질 막는다더니…중소기업 더 궁지로 몰아

중앙일보 2020.04.14 00:34 종합 24면 지면보기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대책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노무현 정부는 2006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를 해소하고자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지정하면서 대기업 참여를 제한했다. 법을 위반하면 시정 명령을 할 수 있고,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 제재도 가능하다.
 

상생법 만들수록 기업 양극화 심화
공정위·중기부 이중 규제 가해져
대기업 족쇄 채워 국가 경쟁력 약화
규제 피하려 외국기업과 거래 증가

그러나 이 지정제도가 국가경쟁력을 저해하고 소비자 보호에 취약하다는 비판이 일면서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고유업종 지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에 중소기업청이 사업을 조정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자 정부는 2012년 법을 개정해 민간 합의로 조정문제를 해결하도록 동반성장위원회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이 위원회는 민간인만으로 구성되었으며, 핵심 업무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품목을 정해서 권고하는 역할이었다. 특히 기업형 수퍼마켓(SSM)으로부터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 지분이 51% 이상인 SSM 가맹점을 상대로 주변 소상공인이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극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시작한 이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중소기업청에서 격상된) 중소벤처기업부는 여기에 추가로 1%도 안 되는 피해율을 일반화해 기술유용 행위로 추정되는 사실만 존재하면 형사 처벌도 가능하도록 하는 상생 협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상생법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해주고 대기업 참여를 제한했는데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오히려 외국계 SSM의 시장지배력이 확대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특히 소비자가 해외 직구를 통해 질이 좋고 저렴한 외국제품을 선호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설상가상으로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O2O(Online to Offline)’ 시장마저 커지면서 소상공인·중소기업은 물론 SSM이 함께 위기에 직면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중기부 권한만 끝없이 확대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결국 상생법은 양극화 해소는 물론이고 소비자 권익, 산업 경쟁력 제고 등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법률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중소기업들에 대한 과잉 지원과 보호가 오히려 독이 됐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이들 간의 경쟁만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가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영세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에 편승해 임시미봉책을 남발하고 있다. 상생법의 역할을 더욱 확대해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보호를 강화하면 양극화가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다. 대표적인 예가 2019년 1월 개정된 상생법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상생법의 소관 부처를 중기부로 이관한 후 종래 중기부의 역할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덧칠했다.
 
이 법 개정으로 인해 지난해 7월부터 수탁기업(중소기업)은 ‘부당 납품대금 산정 및 지급’과 ‘물품강매’ 행위가 있었다고 신고만 하면 중기부가 나서서 위탁기업(대기업)에 시정 명령을 할 수 있고, 이행하지 않으면 직접 형사 고발도 가능하다. 물론 대기업이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면책이 되지만 엄청난 고통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형사소송에서 검사가 유죄를 입증하지 않고 피의자에게 무죄를 입증하라는 것과 유사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중소기업

이외에도 중소기업이 신고하거나 분쟁조정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대기업이 거래물량을 줄이거나 거래정지 또는 그 밖의 불이익을 주면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게 됐다. 이때도 대기업 측이 원인과 결과 간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면책될 수 있지만, 이 또한 많은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중기부는 당사자 분쟁조정 요청 없이도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공정위의 직권조사권에 대해 비판이 많았던 점을 고려해 보면 중기부의 직권조사권 추가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중기부는 지난해 1월 법 개정을 통해 하도급 거래에 대해서도 공정위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확보했는데도 권한을 더 확대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상생법 개정안을 또 마련하면서다. 그 핵심 내용은 대기업의 기술유용 행위에 대해서도 입증책임을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부당 납품대금 산정 및 지급’과 ‘물품강매’ 행위에 대해서만 대기업에 입증책임을 전환하고 있다. 앞으로는 기술유용 행위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하도급 거래를 종료한 후 그 거래상품과 유사한 제품을 자체 생산해 내거나 다른 업체를 통해 공급받으면 기술유용 행위로 추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중기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경험이 0.7%에 그친다. 이는 중기부가 1%도 안 되는 피해율을 근거로 시장에 개입해 위탁계약을 체결하면 거래기업 중 어느 하나가 망하지 않는 한 영구적으로 거래하도록 강제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로 떠나는 일감 늘어나
 
물론 중기부의 변신으로 상생법이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제고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상생법 개정 이후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국내 대기업이 해외기업에 제조자개발주문생산(ODM) 방식으로 위탁생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된 결과일 수 있지만, 상생법 개정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국내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에 위탁생산을 하는 한 생산원가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 중소기업이 진정으로 상생법 개정을 원했는지도 불분명하다. 이 법을 핑계로 대기업은 자유롭게 외국 기업들과 위탁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상생법은 원점에서부터 그 역할의 타당성과 효율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옥상옥에 결함투성이 ‘상생법’ 개정해야
상생법은 입법목적과 규제방법 면에서 입법론적으로 수많은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법리적으로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될 여지가 매우 크다.
 
우선, 상생법은 입법목적과 규제내용 간의 정합성이 부족해서 입법 목적이 부당한 위헌적 법률이 될 여지가 크다. 상생법은 제1조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즉, 하도급법과의 관계에서 옥상옥이 되어 중복규제를 가하는 위헌적 법률이 될 여지가 매우 크다. 또 상생법은 규제의 정도가 과도하다는 점에서 규제방법이 적절치 못한 위헌적 법률이 될 여지가 있다. 현행 하도급법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위탁사업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수탁사업자 보호에 치중하고 있지만 양극화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중기부에 공정위보다 더 강력한 규제권을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의 사익(私益) 추구 행위를 제한하면 반대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공익(公益)이 실현돼야 바람직하다. 그러나 상생법으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일감을 해외기업에 빼앗기게 되면 이는 명백히 문제가 있는 법률이다. 즉, 법익 균형성을 상실한 위헌적 법률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상생법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중기부의 규제 권한만 강화하고 시장만 죽이는 법률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면 될수록 그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상생법을 전면 개정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신음하는 중소기업을 살리고 중기부의 제 역할을 찾아주는 유일한 길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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