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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니스트의 눈] 감시 권위주의, 서구 포퓰리즘의 표류, 그리고 한국모델

중앙일보 2020.04.14 00:30 종합 20면 지면보기

코로나전쟁과 국가의 변신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 1월 중국 상하이. 한 남성이 변형된 중국 공산당의 상징 그림이 그려진 벽화 앞을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 1월 중국 상하이. 한 남성이 변형된 중국 공산당의 상징 그림이 그려진 벽화 앞을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중국 정부가 인구 1000만의 대도시 우한을 통째로 봉쇄하는 강경책을 발표했을 때, 서구 시민들의 첫 반응은 아마도 냉소적인 의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얼마 후, 미국·유럽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폭발하자 서구 국가들은 반자유주의적 봉쇄 조치들을 너나없이 서둘렀다. 문화와 외교의 도시 빈은 주민 5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는 실질적 통행 금지령을 내렸고, 위반자들에게는 최대 2180유로의 벌금을 매기겠다고 공포하였다. 자유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미국에서는, 시민들의 이동을 감시하기 위해서 지방 정부들이 감시용 드론을 속속 구입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감시 권위주의, 거주 통제에만 그치지 않아
미·영 포퓰리즘은 코로나 앞에서 신뢰 추락
서구, 동아시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게 돼
국가·민간 협력 유연해야 스마트 모델 가능

전쟁은 인간 삶의 최대 비극이지만, 전쟁을 통해 국가는 진화하거나 변형되거나 타락해간다. 21세기 코로나바이러스 전쟁을 치르면서, 지금껏 물밑에서 요동치던 국가들의 민얼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1세기 국가들의 새 얼굴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진다. ①첫째 경로는 중국·러시아 등 기존 권위주의 국가들의 감시 권위주의(surveillance authoritarianism)로의 진화 ②둘째는 그동안 경제 양극화와 포퓰리즘 정치로 멍들었던 서구 자유주의의 대혼란 ③셋째는 바이러스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한국·대만 등의 스마트 개입 국가다.
 
이러한 세 갈래 길은, 단지 방역정책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가 혹은 투명하고 개방적이냐의 문제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실은 코로나 전쟁을 계기로 떠오르는 국가의 변모에는 지난 10여년간 자본주의 체제의 성격 변화라는 거시적 흐름이 작용하고 있다. 데이터 자본주의 혹은 감시 자본주의라 불릴 만한, 새로운 경제의 이윤과 재생산 구조는 구글·페이스북 등의 공룡 기업들이 데이터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개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연결·통합·모니터링 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왔다.
 
중핵을 이루는 데이터는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모든 측면으로부터 추출된다. 예컨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시청 시간이 20%나 늘어났다는 넷플릭스가 기획 제작하는 영화·드라마 대부분이 성공하는 까닭은 수억 명의 넷플릭스 구독자의 취향과 시청 패턴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30~40대 남성은 액션물을, 20대들은 판타지물을 좋아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아시아 지역의 30대 여성 구독자들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어느 부분을 다시 돌려보기하고, 어느 부분을 2~3배속으로 빠르게 지나치며, 대개 어디쯤에서 지루해하는지를 넷플릭스는 시시콜콜 꿰고 있다.
 
영화 취향만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구글은 나라별로 시민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공원에 얼마나 자주 갔는지, 온라인 쇼핑이나 식당 이용률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비율은 어떤지를 이미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경영학자 쇼샤나 주보프의 표현대로라면, 데이터 기업들은 사람들의 음식 취향(배달의 민족), 문화 취향(넷플릭스), 소비 취향(아마존), 친구들 사이의 대화(페이스북) 등 모든 행위를 들여다보고 엿들으면서(시리) 축적한 빅데이터를 갖춘 21세기의 빅 브러더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움을 통해서 다시금 전쟁의 리더로 나서게 된 국가 권력이 데이터-감시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어떤 변화들을 일으키는지 살펴보자.
 
첫 번째 길은 감시 권위주의의 등장이다. 중국·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감시 권위주의 국가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감시 권위주의는 바로 빅 브러더 기업들과 권위주의 국가의 편리한 결합이다. 여기서 국가는 시민의 생명권을 지킨다는 목적 아래, 시민들의 거주와 이동을 통제·허가·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골목골목 설치된 수백만 대의 감시 카메라, 마을마다 띄워 놓은 안면인식 드론, 시민들 휴대폰에 장착된 앱을 통해 국가는 시민 개개인의 체온, 신체적·감정적 상태에 관한 데이터를 감시·저장하게 됐다. 20세기의 전체주의가 폭력과 테러·공포로써 시민들을 지배했다면, 21세기 감시 권위주의는 시민들의 생체정보·감정·행동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하는 권력이 극도로 집중화된 체제다. 이러한 감시가 어디까지 나아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위해 음압 병실로 들어 가는 대구 동산병원 의료진.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위해 음압 병실로 들어 가는 대구 동산병원 의료진. [연합뉴스]

둘째,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맞아서 겪고 있는 대혼란은 자유주의 모델의 대혼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작은 정부와 시민들의 자유를 외치던 자유주의 국가들은 최근 포퓰리즘에 의해서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미국의 트럼프나 영국의 보리스 존슨은 분열과 경제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모든 문제의 빠르고 단순한 해결, 지도자 중심의 단합이라는 달콤한 약속을 내세워 권력을 장악했었다.
 
하지만 공공의료 인프라뿐만 아니라, 행정 인프라마저 느슨하고 불충분한 자유주의 국가들은 바이러스의 대공습 앞에서 혼란에 빠져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내세웠던 빠르고 단순한 해법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민들은 처절하게 확인하고 있다.
 
또한 포퓰리스트들이 부채질해온 분열과 정체성의 정치는 코로나 공포 앞에서 사회적 신뢰의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사재기가 벌어지고 부자들의 도시 탈출, 중산층·빈곤층의 도시 고립으로 분열은 심화하고 공동체는 흔들린다. 물론 일부 선진국들은 먼저 백신 개발에 성공하고, 마침내는 경제와 외교적 영향력을 회복하겠지만, 코로나 전쟁이 가져온 내부 분열과 자신감의 상처, 국가와 시민 사이의 불신은 오래 남을 것이다.
 
셋째, 흔들리는 서구 자유주의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마침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역시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구 자유주의가 갖추지 못한 비상사태 대응 능력을 충분히 보여 왔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1차 병원, 수만 개의 약국, 곳곳에 포진한 보건소(유감스럽지만 우리 대도시에 국한된 얘기다), 온 국민이 가입된 의료보험에 힘입어 우리는 감염 의심자의 빠른 검사와 동선 추적, 접촉 경로 파악과 정보공개를 기반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있다.
 
방대한 보건 행정 인프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 민간의 협업이 보건 전쟁 시기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국을 통해 공공 마스크를 공급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느 약사의 제안이었다. 그러자 민간 앱 개발자들은 며칠 밤을 새워가며 전국의 약국별 마스크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앱을 개발하였다. (일주일 만에 44가지의 서비스가 개발됐다) 여기에 네이버·KT 등이 클라우드·웹서버 등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결국 공공의 데이터 개방과 민간의 노력이 결합한 시빅 해킹을 통해 마스크 대란은 진정됐다. 한국형 방역의 요체는 결국 민간의 창의력, 정부의 행정 인프라, 시민들의 신뢰라는 세 요소가 스마트하게 협업하는 데에 있다.
 
과제는 남아 있다. 압도적인 정보와 행정력을 갖춘 국가와 창의적인 민간의 협력이 비상시에는 엄중하게, 평상시에는 민간 주도로 작동하는 유연함을 확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마트 개입국가 모델을 세계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시 권위주의, 전체주의와 뭐가 다른가
유발 하라리를 포함한 평론가들은 코로나 전쟁으로 20세기 전체주의가 돌아온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20세기 전체주의와 21세기 감시 권위주의는 꽤 다른 정치체제다.  
 
①전체주의가 폭력을 독점하는 체제였다면, 감시 권위주의는 데이터 생산과 유통, 저장의 독점을 통해서 권력을 유지한다.  
 
②전체주의는 위계적 행정조직을 통해 테러를 행사하고 시민을 통제했다면, 감시 권위주의는 인간 행동(생체정보·말·감정)을 규제,통제하는 수단을 지배한다.  
 
③전체주의는 시민들을 원자화시키고 분리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도전을 억압한 반면, 감시 권위주의는 시민들을 정보 네트워크 안에 상시적으로 연결시켜두고 늘 지켜본다. (주보프,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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