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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의 한반도평화워치] 5년 단임 정부가 70년 국가 동맹의 근간 흔들었다

중앙일보 2020.04.14 00:19 종합 23면 지면보기

총선과 외교·안보 중간성적표

내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정치는 좌우 대립과 진보·보수 진영 대결이 거세지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중간지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좌우 구분은 시대 상황과 판단 기준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보수는 우파, 진보는 좌파로 동일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모 아니면 도’로 쫙 쪼개진 사회가 무섭기까지 하다. 이번 선거가 금배지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된 것은 집권 여당이 제1 야당을 배제한 채 1+4라는 범여권 합의를 통해 ‘국민은 알 필요 없는 계산 방식’의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행한 데서 비롯됐다.
 

이념 편향적 대북 과잉 쏠림으로 외교·안보 실패
외교가 국내 정치 수단이 되며 안보에 구멍 생겨
주변국 위협하는 중국 맞서려면 미국 활용 필요
총선이 정권 안보 아닌 국가 생존 위한 선택돼야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을 위한 타이밍은 절묘하다. 한 달여 전만 해도 정부의 코로나19 초기 방역 실패에 격분한 민심은 100만 명이 넘는 대통령 탄핵 청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의료진의 노력과 시민 참여로 국내 상황이 진정 국면으로 돌아서고 해외 호평이 이어지자 코로나는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선물이 됐다. 원래 총선이란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기 마련인데, 선거 쟁점이 돼야 할 헌정·안보·민생 영역 실정(失政)도 ‘코로나 정치 특수’에 묻혀 버렸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위기로 매우 중대한 결정을, 그것도 빨리 내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선택이 오랜 기간 인류 미래를 결정하는 만큼 비상시국에 졸속 선택의 위험을 경고했다. 이는 미증유의 국가적·세계적 위기 속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대국적 안목과 비전 경쟁을 선택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유권자의 현명함과 신중함을 촉구하는 경종이 돼야 한다.
  
‘한국의 핀란드화’ 경계해야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중간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중간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지난 3년 문재인 정부의 잘못 중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경제·민생문제다. 하지만 ‘코로나 탓’ 프레임으로 절묘한 알리바이가 성립되며 표심을 지켰다.
 
국가안보와 외교정책 실패는 이념 편향성 대북 ‘과잉 쏠림’이 원인이었다. 문 정부는 출범 당시 ‘당당한 4강 협력 외교’를 국정과제로 표방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사기극에 끌려다니다 받아든 외교·안보의 중간성적표는 흔들리는 한·미동맹,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 눈치 보는 대중 외교, 굴욕적 대북 관계 등 총체적 대실패다. 그런데도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없앴다”는 대통령의 공언(空言)과 “우리가 북한보다 미사일을 더 많이 쏜다”라는 문체부 장관 출신 여당 후보의 망언은 이번 선거에서 세월호 막말과 코로나 표심에 묻혀 버렸다. 핵보유국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는 핵 무력을 바탕으로 재래식 도발 전략을 공고히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중간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중간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연합뉴스]

북한의 멸시와 욕설, 노골적 도발 행위에도 “그러면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냐”라는 논리 속에 대북 지원과 대화 협력으로 일관하려는 현 정권의 정책은 김정은의 핵무장 시간만 벌어준 격이 됐다. 남북정상회담이 대통령 국정 지지도를 83%까지 끌어 올려준 ‘좋았던 기억’ 때문일까. 반미·반일 정서는 방치·조장하면서 지난 몇 달간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김정은 아니면 시진핑’ 방한이었다. 외교가 국내 정치의 수단이 되면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법이다. 5년 단임 정부가 70년 국가 동맹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가진 게 핵밖에 없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이제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된 한반도에서 안보 위기를 없애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해 미국 핵우산으로 북한 핵 위협을 무력화하고 군사 도발을 억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방안이다. 이를 위해 동맹이 필요한 데도 이제 대미 안보 의존을 넘어 사안별로 국익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외교·안보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중국과 독자적 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대미·대일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환영받고 있다.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속에 현 정부가 중립이라는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려는 입장도 이러한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에서 보듯 중국은 대국(大國)을 자처하면서도 주변국을 겁박하고 있어 ‘한국의 핀란드화’(약소국이 인접 강대국의 뜻에 따라 국익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주변국들의 국력 격차로 유럽과 같은 자체적인 역내 세력 균형 구축은 불가능하다.
  
미·중 패권 전쟁으로 양자택일 몰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역외 강대국인 미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동맹은 삐걱대고 전통적 한·미·일 안보 공조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터진 코로나 사태는 미·중 갈등을 최고조로 치닫게 하였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러스의 미국 유입과 확산 원인으로 중국 책임론을 부각하며 대중국 견제와 압박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가속하며 다른 국가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전방위적 미·중 패권 전쟁이 양자택일의 선택으로 우리의 목을 옥죄어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 총선에서 몇 개 되지도 않는 집권당의 외교안보공약은 남북 공동 선언과 군사 합의 이행,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개혁을 좌절시키고 평화를 방해하려는 세력들”로부터 승기를 잡았다며 압승을 기대하는 이해찬 여당 대표의 모습을 보면, 2018년 김영남 북한 상임위원장과의 평양 회동에서 “정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남북 관계가 단절돼 손실을 많이 봤다”라던 그의 말이 떠오르며 섬뜩해진다. 좌우 집안싸움을 통한 정권 안보 획득이 아니라 앞선 세대가 피땀 흘려 지키고 가꿔온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
 
우리 사회엔 진보 우파와 애국 좌파가 필요하다
프랑스혁명 이후 좌·우파 기원이 된 국민공회 자리 배치. 의장석 기준으로 급진 자코뱅파는 왼쪽, 보수 지롱드파는 오른쪽에 앉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프랑스혁명 이후 좌·우파 기원이 된 국민공회 자리 배치. 의장석 기준으로 급진 자코뱅파는 왼쪽, 보수 지롱드파는 오른쪽에 앉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정치세력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좌·우파란 용어는 1789년 프랑스혁명 때 처음 사용됐다. 당시 소집된 국민공회에서 의장석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혁명세력인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공화파가, 우측에는 기존 귀족세력의 권익을 옹호하는 왕당파가 앉은 데서 기인했다. 1792년 왕당파 제거 후 열린 국민공회에서 공화파가 분열하여 부르주아적 보수세력인 지롱드파는 오른쪽에 앉고, 급진적이고 대중적인 자코뱅파가 왼쪽에 앉은 것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이렇듯 좌·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기존의 법과 제도에 대한 인정 여부와 변화 속도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흔히들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 칭한다.
 
좌파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한 것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소수 부르주아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에 반대하는 노동자 프롤레타리아 세력이 반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뭉치면서부터이다. 냉전 도래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당제 민주주의 세력은 자본주의 우파로, 소련과 같이 공산당 일당체제는 좌파로 대립하면서 서로 무찔러야 하는 악의 대상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점차 서구를 중심으로 좌·우파 구분은 대립적이 아닌 중도적 관점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나타났고, 냉전 종식 후 20세기 후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는 최초의 좌우 대결은 반공이냐 용공(친공)이냐는 이념적 대결로 시작하였지만, 군부 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이념과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를 해석하는 시각에서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양분됐다. 어느 쪽으로 선택하든 ‘수구 꼴통’‘토착 왜구’‘종북 좌빨’ 같은 극단적 언어도 서슴지 않고 선거에서 극명한 진영 대결이 드러나곤 한다. 진보 우파와 애국 좌파가 필요하다는 연세대 김명섭 교수의 주장처럼, 우파는 기존 가치와 제도를 중시하되 사회적 약자 편에서 불공정 제거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고, 좌파는 기득권층이 가진 불의에 맞서고 사회 개혁을 주창하더라도 북한 폭정과 도발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인권 유린, 천안함 폭침, 핵·미사일 도발 등에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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