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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코로나19와 함께 온 현대

중앙일보 2020.04.14 00:09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혁진 소설가

이혁진 소설가

IT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를 판교에서 만났다. 말쑥한 캐주얼 차림에 내향적 성격을 암시하듯 꾹 눌러 쓴 야구모자. 마스크를 쓴 채 나를 알아본 친구는 손을 흔들며 징검다리를 건너듯 겅충겅충 뛰어왔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재택근무
일·생활의 분리·균형 경험케 해
지금 필요한 건 현대적 상상력

회사는 한 달 만에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재택근무는 회사 권고사항이고 기한은 아직 없었다. 나는 답답하겠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화상으로만 의사소통하는 것도 그렇고 일의 진척이 사무실에서처럼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는 조금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아니라고. 오히려 사무실에 함께 모여 일한다는 것이 지금껏 과대평가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라고 말했다.
 
“매일 출근할 때도 생각했거든. 어차피 각자 자기 일 하는 건데 굳이 모여서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막상 해보니까 명백해진 거지. 각자 자기 결과물 제출해서 화상회의로 얘기하고 결론 내서 다시 할 일들 나누고 간추리고 일정 조정하고 그런 다음 또 각자 할 일들 하고. 결과물 갖고 이야기하는 거니까 사무실 회의처럼 늘어질 것도 없고 지금 결정할 것, 나중에 결정할 것 정리하기도 분명해지고. 오늘도 일 때문이 아니라 사무실 이사 때문에 나왔다니까. 책상 정리하고 짐 옮기는 건 화상회의로 못하니까. 좀 웃기지 않아?”
 
그래도 동료들 오랜만에 보는 것이 즐겁지 않냐고, 매일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일 얘기도 하고 상사 뒷담화도 하고, 사무실 생활에는 그런 재미가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물론 반갑기는 했지. 아까 잠깐. 사실 난 그것도 착각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어쨌거나 출근했으니까, 회사에 나와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거잖아. 친한 동료들한테도 가끔 그런 얘기해. 나중에 우리가 다른 회사에서 서로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면 따로 연락해서 볼까요? 대답은 서로 똑같아. 글쎄요, 아마 안 그러지 않을까요?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서로 잘 맞아야 하고 또 이해관계 없이 대등해야 하는 건데, 회사라는 환경은 그 반대잖아. 그래서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사람보다 그 사람의 말에, 내놓는 결과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막상 대면하면 하기 어려운 비판적인 이야기도 객관적으로 할 수 있고. 평가도 명백해지는 것 같아. 아무래도 어울리고 회식하다보면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생길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일과 결과로만 평가할 수밖에 없으니까.”
 
기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변화다. 기준에 맞게 일하고 그 성과만큼 공정하게 평가받는 것. 그 이상을 받거나 그 이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 시간과 감정까지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일과 생활의 분리와 균형. 하지만 친구가 자조하며 말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별거 아니구나, 그런 생각도 들어. 나처럼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모니터 이쪽에 있으면 일은 돌아가는구나,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어쩌면 화상회의에 비치는 홀로그램만 있어도 되겠구나.”
 
첨단 직군이라도 예외일 수 없을 테고 기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 도처에서 폐점과 실업이 대량 발생하기 시작했고 산업의 추는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그 추가 어디서 어떻게 멈출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생태계가 재편될 것은 분명하다. 소수는 상위에 오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하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중 대부분은 이미 하위에 있는 사람일 테고. 나는 모든 변화가 그렇지 않냐고,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대꾸했다. 심드렁한 소리였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하위로 떨어지는 쪽이 내가 되지 않기를 내심 바랄 뿐.
 
하지만 친구는 싱긋 웃었다. “근데 홀로그램이 나 대신 일 해주면 더 좋은 거 아냐? 전기밥솥이 밥해주는 건 모두 좋아하잖아. 사실 난 지금이 좀 재미있기도 해. 이제야 얼마쯤 현대가 된 것 같잖아. 일을 일로만 처리할 수 있고 현대적 위생개념에 맞게 손 씻기를 하고 불필요한 접촉도 안 하고 대기는 훨씬 맑아졌고. 사실은 모두 근대적으로 일하고 살아왔던 거잖아.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이유로.”
 
피식 웃었지만 이내 ‘현대’라는 단어가 종소리처럼 울렸다. 내내 이 상황을 근대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자각과 함께. 지금 맞이하고 있는 변화의 모습은 일면 우리가 교육받고 상상해 온 현대다. 방점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에 찍혀야 할 것이다. 지금의 고난을 온전히 극복해 내기 위해서도, 당면한 변화가 현대를 향한 반걸음의 이행이라도 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적어도 현대적 상상력이란 친구의 농담처럼 유쾌하니까.
 
이혁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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