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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52)

중앙일보 2020.04.13 00:09 종합 31면 지면보기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아빠, 저 경비 아저씨, 참 힘들겠네.” 아빠가 대답했다. “응, 많이 힘들 거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창졸간에 나는 공부를 안 해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이가 없어 아빠를 한참 쳐다봤더니 무안했던지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지하실을 보금자리로 살아가는 고양이가 밥 먹는 내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밥알이 바닥에 떨어지자 어디선지 개미떼가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문득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공부를 안 해서 이렇게 된 것일까?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솔직히 자녀교육이랍시고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한 적 있다. 부끄럽고 죄스럽다. 당신은 어떠신가.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2016년 60세로 퇴직한 저자는 버스회사 배차관리, 아파트 경비, 청소 업무를 하는 시급 노동자가 됐다. 일터에서 ‘임계장(님)’으로 불렸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비정규직의 삶은 고달팠고 노인이라는 이유의 차별까지 있었다. 하루하루 울분과 설움을 메모로 남긴 게 생애 첫 책이 됐다. 생생한 노동일기의 울림이 크다. 임계장은 ‘고다자’라고도 불린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이후 닥쳐올 경제적 재편을 예상해 보면 더욱 무겁게 읽히는 책이다.
 
저자는 ‘감사의 글’에서 가족에게 특별한 부탁을 남겼다. “수많은 임계장들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 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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