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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에 회원국 절반 90여개국 ‘살려달라’ SOS…“세계대전 이후 최악”

중앙일보 2020.04.12 17:20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인에게 공포의 단어다. 경제위기와 동의어가 됐다. 한국 정부가 국가 파산이라는 위기를 맞아 IMF으로부터 급하게 돈을 빌려야 했던 1997년 11월부터다. 이렇게 IMF는 국가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때마다 등장해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해왔다.  
 
지난달 27일 찍힌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간판.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찍힌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간판. 연합뉴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IMF를 향해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할(must step in) 때”라고 선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이로 인한 경제 충격을 주제로 한 11일자(현지시간) 커버 스토리를 통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경제 대책 시행, 건강ㆍ의료 지원에 나서기는커녕 당장의 수입 대금과 달러 표시 부채도 막지 못해서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인 IMF에게 도움을 요청한 국가가 90개를 넘어섰다”고 이날 보도했다. IMF 회원 189개국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숫자다. 전례 없는 수치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이 점점 확산하며 IMF에 ‘SOS’를 친 국가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그동안 IMF는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몇몇 신흥국을 대상으로만 ‘핀셋’ 지원을 해왔다. IMF 말고는 빌릴 데가 더는 없는 국가가 주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982년 멕시코, 87년 브라질, 97년 한국, 2012년 그리스 등이 그랬다. 
 
이번에 다르다. 코로나19 확산엔 지역과 국경이 따로 없다. 경제 충격도 마찬가지다.  
 
지난 9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시내에 식량 배급을 받으려 모인 노숙자들. 신종 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감염 위험에 식량 배급을 맡은 직원이 방호복을 입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시내에 식량 배급을 받으려 모인 노숙자들. 신종 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감염 위험에 식량 배급을 맡은 직원이 방호복을 입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선진국에 비해 경제 기반이 취약한 신흥국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 9일 발간한 ‘자금 흐름 보고서’에서 올해 58개 신흥국(중국 제외)에서 2160억 달러(약 262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빠져나가겠다고 전망했다. IIF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 달에만 이미 830억 달러가 신흥국에서 유출됐다. 코로나19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해져 달러화 가치가 치솟았고, 신흥국이 갚아야 하는 달러 표시 부채의 규모도 덩달아 불어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로 인해 무역 감소, 천연자원 가격 하락, 여행객 방문 중단 등이 동시에 닥치며 신흥시장은 금융위기와 사투 중”이라며 많은 신흥국이 IMF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했다. 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마우리 옵스펠트는 12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기점에 서 있다”라며 “(IMF에게 있어) 아마도 세계대전 이후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세계 금융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IMF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정에 따라 1944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함께 설립됐다. 세계대전으로 황폐화한 각국의 산업과 경제를 재건하고 또 승전국인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자리 잡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옵스펠트의 말처럼 IMF에게도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는 유례가 없는 도전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연합뉴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맞서 IMF가 당장 해야 할 일 3가지를 제안했다. 먼저 ▶IMF 특별인출권(SDRㆍIMF가 발행하는 일종의 가상통화) 한도를 대폭 늘리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지원 대상이 아닌 여타 신흥국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며 ▶의료ㆍ경제 지원 사각지대에 있는 아프리카 최빈국 구제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를 앞에 두고 IMF는 시험대에 올랐다.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IMF 봄 연차총회(Spring meetings)’가 그 첫 무대다. 화상으로 열리는 이번 회의에 IMF와 세계은행(WB) 주요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이 참여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총회에 앞서 9일 공개한 화상 연설문에서 “과거에 없던 위기에 현재 직면해 있다”며 “지금 우리가 할 행동이 경제 회복의 속도와 강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하며 행동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IMF가 이번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이를 감당한 충분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 일고 있다”고 짚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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