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즐로벌 줌업]
팬데믹 와중 러시아 음모론으로 세계 흔들
“소로스가 우한666번지서 몽골계 노려 개발”
“코로나19는 게이츠와 록펠러 재단의 계획”
러시아발 허위정보 범람에 EU, 긴급 대응팀
러, 다국어 국영매체 앞세워 글로벌 여론전
치밀한 구성에 대중 흥미 끄는 솔깃한 내용
프로파간다 선전전에 열 올리며 내부 단속
러·중, 미군 전파설 등 확산하며 체제전쟁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 우월 인식 퍼질까

강인한 인상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약한 병아리를 살펴보고 있다. 2008년 총리 시절 농업산업 전시회장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위기 속에서 허위정보와 역정보로 서방을 농락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입원 존슨 총리 위독설 확산한 러시아 통신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코로나19 위기로 범람하는 가짜 정보와 싸우는 것은 우리의 주요 임무”라고 밝혔다고 BBC 방송이 보도했다. 허위 정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영국의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는 “SNS 업체에 잘못된 정보와 소문의 확산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모습.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하다가 병세가 악화해 입원했다. 중화자실을 거쳐 현재는 다시 일반 입원실로 나온 상태다. 존슨 트위터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의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EPA=연합뉴스
EU, 허위정보·역정보 대응 전담조직까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 러시아 관영매체들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를 나토가 개발했다는 허위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1위 허위정보 ‘바이러스는 미국이 만든 것’
ESC가 지목한 코로나19 관련 5대 가짜 뉴스는 1위가 미국이 이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2위가 EU는 대응에 실패했다, 3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심각하지 않다, 4위가 글로벌 엘리트들의 비밀 계획이다, 5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만들었다 등이다.
러시아, 관영매체·SNS 앞세워 역정보 확산
SNS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필립 리커 미국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 수천 개를 이용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2월 25일 보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중국과 경제전쟁을 벌이기 위해 생물학적 무기로 개발한 것’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다.
!['소로스 펀드'를 운용하며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려온 조지 소로스.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4/12/398c6798-a44b-48b0-b0dc-351de1ed6ae1.jpg)
'소로스 펀드'를 운용하며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려온 조지 소로스. [로이터=연합뉴스]
‘소로스가 몽골계 공격 바이러스 개발’ 주장
“코로나19가 대대적으로 확산했던 중국 우한에는 비밀에 둘러싸인 생물학 연구소가 있으며 그 주소는 가오신대로 666번지다. 666은 신약성서 요한계시록(가톨릭에선 묵시록으로 표현)에 등장하는 짐승의 이름이다. 이 업체는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의 자금으로 운영된다. 소로스는 빌 게이츠와 글로벌화의 이상을 공유하는 사이다. 이 회사는 소로스의 교활한 계획의 하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몽골계에게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대단히 수상쩍으며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상하이(上海)에 본사를 둔 영어로 ‘WuXi AppTec’, 중국어로 야오밍캉더(藥明康德)라는 기업의 자회사인 우한 야오밍캉더(武漢藥明康德新藥開發有限公司)가 해당 주소(武漢東湖開發區高新大道666號)에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자회사는 분자의약품을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소로스가 투자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소로스는 헝가리계 미국인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동유럽 등에 투자해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 교육을 확대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소로스를 바이러스 악당으로 몰아세우는 스토리가 러시아에서 나온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빌 게이츠. [EPA=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4/12/180a0786-48b6-4315-843e-87a609c23f25.jpg)
빌 게이츠. [EPA=연합뉴스]
‘다보스포럼서 게이츠 등 확산 결정’ 괴담도

뉴욕 맨해튼에 있는 록펠러 센터의 모습. UPI=연합뉴스
믿도록 현혹하는 그럴싸한 줄거리 줄줄이
“록펠러 재단과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2010년에 발표한 ‘미래기술과 국제개발(Scenarios for the Future of Technology and International Development)’이라는 문서에 코로나19의 비밀이 담겨있다. 록펠러 재단의 목적은 록펠러 가문의 세금 최적화와 산아제한, 글로벌 인구를 10억 정도로 줄이고 탈산업화하는 것이다. 이는 1968년 글로벌 정부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로마클럽에서 정한 임무다. 이를 위해 야생 거위를 매개로 한 돌연변이로 주로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전염병 팬데믹을 일으키는 록 스텝(Lock Step)을 실행한다. 이를 통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노예제를 전 세계에 확립한다. 201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것 같다는 신호가 나오자 록펠러 재단은 즉시 록 스텝, 또는 코비드19로 불리는 작전에 들어갔다.”
황당하지만 내용이 하도 정교하고 그럴싸해 믿는 사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특히 ‘록 스텝’이라는 단어는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록 다운(Lock Down)’, 즉 격리와 비슷해 뭔가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의료 용품을 적재한 러시아 볼가드네프르 항공 소속 안토노프 AN-124-100 화물기(윗쪽)가 폴란드 바르새바의 바르샤바-쇼팽 공항에 도착해 있다. 앞에 폴란드 항공 소속 소형 여객기가 보인다. EPA=연합뉴스
황색저널리즘 기법 활용하기도
“코로나19 유행은 007 수퍼 바이러스의 비밀 생물학전의 결과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주에서 왔다.”
“380명의 벨기에인이 대규모 집단 성관계로 코로나19에 단체로 걸렸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이유의 하나가 동성 결혼의 합법화다.”
대중이 술자리에서나 꺼낼 정도의 흥미 위주 이야기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지난 3월 24일 코로나19 환자들이 입원 중인 모스크바 남쪽 병원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노란색 방호복을 입고 병원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러시아는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직접 찾아간 지도자는 푸틴 대통령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타스=연합뉴스
반러 국가를 후회하게 하는 역정보도도
친크레믈린 매체들이 퍼뜨리는 또 다른 줄거리는 “EU는 이기적이며 자산의 가치를 배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EU에 가입하거나 서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기대해온 우크라아나에선 자신들의 외교정책이 실패하고 ‘동맹으로 여겼던 유럽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서 서유럽을 택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정보 공작이다. 반러 국가를 후회하게 하는 역정보를 퍼뜨리는 셈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믿음직한 강국” 이미지 조작
러시아와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중국식 모델이 유럽 모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국내에서 불만을 누르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 국제방송 채널인 RT는 서방 매체에 부각된 시리아의 인도주의 인명구조대인 하얀 헬멧이 코로나19를 이용해 서방의 지원을 호소한다고 주장했다. 하얀 헬멧은 친러시아 정부군의 눈엣가시로 통하다. 친정부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다치거나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주로 구조하면서 서구에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고발해왔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라트비아산” 주장도
예를 들면 라트비아가 개발한 바이러스는 프랑스 시위대인 노란조끼를 목표물로 삼고 있고,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를 도우며, 홍콩 시위대 진압에 사용하고, 기업체 이사회에서 젠더 균형을 만들며, 이탈리아에서 연금 예산을 줄일 목적이라는 등 실로 다양한 이유를 대왔다. 서로 모순이 되기도 하는 등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러시아가 지켜본 다양한 유럽의 사회 현상에다 마구 연결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주장은 서구 주류 언론에도 인용했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다.

러시아가 지난 3월 22일 모스크바 근처의 군용 비행장에서 이탈리아에 전달할 구호물자를 적재한 차량을 IL-76 수송기에 싣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루살이 거짓말도 예사로
폴란드는 1955년부터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국이었으나 1999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으로 말을 갈아탔다. 이 때문에 러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칼리닌그라드 주는 러시아에서 가장 서쪽에 있으며 각종 군사 시설이 몰려있다.
집요하게 반복하면 믿는 사람 늘어
러시아는 그러면서 정치 공작을 멈추지 않는다. 러시아 매체에서 서방을 공격하기 위해 즐겨 다루는 주제는 ‘서방·유럽·미국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는 소련 시절부터 지치지도 않고 다뤄온 해묵은 주장이다. 지금은 유럽의 변화에 따라 유럽연합, 솅겐 지역(1985년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통행에 제한이 없도록 한다는 솅겐 협정에 가입한 지역), 브뤼셀(EU의 수도 격), 유럽의 국제적 역할 등으로 키워드만 바뀌었을 뿐이다.

지난해 10월 26일 주국 우한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시상식 모습. 신화=연합뉴스
중, “미군이 우한에 바이러스 퍼뜨렸다” 음모론
2005년 문경 대회에 이어 열린 우한 대회는 지난해 10월 18~27일 열렸다.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코로나19가 발견된 지난해 12월 31일보다 2달 전에 끝난 행사다. 전 세계 109개국에서 9308명의 선수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중국이 가장 많은 553명의 선수가 참가했으며 브라질 329명, 프랑스 273명, 독일 243명, 폴란드 193명, 한국 172명, 미국 172명, 북한 156명, 이탈리아 139명, 스페인 111명, 캐나다 104명이 각각 출전했다. 미국은 군사력이나 스포츠 수준보다 소수의 선수를 파견했다.
성화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창군 기념일인 8월 1일에 창군의 계기가 되는 중국 공산당의 난창(南昌倉) 봉기를 기리는 장시(江西)성 난창(南昌倉)의 남창팔일기의기념관에서 채화됐다. 2004개국에서 1만942명의 선수가 참가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다음으로 중국이 정성을 들인 국제 스포츠 행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직접 참석해 개막을 선언하고 외빈을 맞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18일 우한에서 열린 제7허ㅣ 세계군인체육대회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군 전파설 전파에 외교부 대변인이 앞장
이 주장은 처음엔 미국 등의 비난에 맞서기 위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강변한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중국은 집요했다.
그 다음으로 중국 관영매체인 글로벌 타임스가 3월 25일 나섰다. 글로벌 타임스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어판 신문이다. 환구시보는 국수적이고 반한적이며 직설적인 기사와 논조로 악명이 높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지난해 10월 18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제7회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외빈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미국 선수단 정보 공개하라” 역공
글로벌 타임스는 “미국은 선수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리하이둥(李海東)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의 발언을 소개했다. 미중 관계가 전공인 리 교수는 “미국 정치인들은 바이러스가 ‘메이드 인 차이나’로 주장하지만 전 세계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기원을 입증할 확증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기원을 알면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므로 선수단 정보를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를 찾아보기 힘든 줄거리 전개다. 당에 충성하는 기관지의 자매지라는 점을 미리 고려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프로파간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유럽 매체들이 일제히 ‘인포데믹’을 경고하고 있는 이유다. 나를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하려면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는 혜안이 절실한 시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