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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음식 만남' 열정 안고 오늘도 1층으로 출근합니다

중앙일보 2020.04.10 15:00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1)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서 26년 살았다. 현재 연희동에서 12년째 요리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언제나 그 계절의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조리법으로 여러 나라의 음식문화와 요리를 가르친다. 음식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탄생한다. 음식을 같이 만들고 즐기고 치우는 과정이 삶이다. 독자들과 요리를 하며 축적했던 생각을 함께 나누려 한다. 〈편집자〉

 
“벌써 1년이나 밀렸어요.”
정말 질린다는 듯한 집주인의 얼굴에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자세히 표정을 들여다보니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집주인은 바로 내 남편이니까. 1년이나 체납하면 퇴거 명령이 아니라 진작에 쫓겨나야 했는데, 지금도 여기서 요리 교실을 하고 있다.
 
‘된장국에 쪽파 대신 달래를 넣어야지. 아! 바질 말고 달래 페이스트를 만들어도 괜찮겠다. 아니지, 페이스트에는 씁쓸한 냉이가 더 어울리려나? 섞을 때는 잣보다 크리미한 피스타치오를 넣어야겠다. 이제 봄이고 주꾸미가 제철이니까 이번 주에 영진이와 아름이가 오면 샤부샤부 해 먹어야지. 그러고 보니 저번에 먹었던 민스커틀릿이 생각나네.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내가 훨씬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 밤은 오랜만에 민스커틀릿이다. 냉장고에 샐러드용 채소 팩이 하나 남았을 거야.’
 
‘음식’에 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머리가 돌아간다. 식재료의 조합이라든가 지금까지의 조리법에 새롭고 독특한 것을 접목한다든가 하는 것부터 식재료 그 자체와 여러 나라의 요리, 먹는 것을 생각하면 오감이 짜릿해지고 머릿속은 쉬지 않고 가동된다. 어린 시절부터 책에서 보거나 어디서 자극을 받아 만든 음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먹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요리했다. 그렇게 누군가가 내 요리를 먹는 것에 소소한 행복과 우월감을 즐겨오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주변의 권유와 함께 무언가에 이끌리듯 요리 교실을 시작했다. 내 요리를 누군가 먹어준다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더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하는 오로지 그 생각 하나만으로 말이다.
 
‘음식’에 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머리가 돌아간다. 식재료 그 자체와 여러 나라의 요리, 먹는 것을 생각하면 오감이 짜릿해지고 머릿속은 쉬지 않고 가동된다. [사진 pixabay]

‘음식’에 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머리가 돌아간다. 식재료 그 자체와 여러 나라의 요리, 먹는 것을 생각하면 오감이 짜릿해지고 머릿속은 쉬지 않고 가동된다. [사진 pixabay]

 
연희동의 2층짜리 주택으로 이사 온 뒤 곧장 시작한 요리 교실은 우리가 살던 2층에서 점심시간에만 진행했다. 그렇게 몇 년간 요리 교실을 하다 보니 조리 도구와 식기가 조금씩이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쌓이고 쌓여 수납공간이 부족해졌다. 게다가 매년 수업이 늘어나고 저녁 레슨이 빈번해지자 종국엔 나도 가족의 안색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춘기인 두 아들의 예민한 반응과 밤이나 주말 클래스 수강생에게 만면의 미소 대신 쓴웃음으로 응대하는 집주인 남편 틈에서 나도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이대로라면 가족 붕괴냐 요리 교실 포기냐 하는 선택에 내몰린 나는 연희동에서 가까운 연남동 부근으로 요리 교실을 열기 적합한 아틀리에를 찾기로 했다. 종종 연희동 집을 수리해주던 집 근처 설비회사 사장님과 알고 지내던 부동산 사장님께 부탁해 여러 건물을 보러 다녔지만, 월세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주말에 자전거로 한 바퀴 돌면서 괜찮은 건물 있나 보고 올게요.” 남편은 그 당시 집에 있던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꽤 많은 건물을 보고 온 모양인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돌아온 남편은 말했다. “우리 집 1층 전세 계약도 6월이면 끝나니까 나한테 매달 월세를 내고 1층에서 요리 교실을 하는 건 어때요?”
 
그렇구나. 그런 방법도 있구나. 마침 2개월 뒤면 전세 계약이 끝나는 1층 세입자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중간에 한 번 계약을 갱신하고 합이 4년간 우리 집 1층에 살던 이는 내 첫 요리책을 만든 편집자였다. 딸이라고도, 동생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미묘한 나이 차의 그녀는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사 오고 바로 저녁 반찬을 나눠주기도 했고 와인이나 위스키를 좋아하는 걸 알고 나선 1, 2층을 오가며 집주인과 세입자, 인생 선배와 후배, 작가와 편집자로 상부상조하는 사이가 됐다. 그런 그녀와 고양이 다섯 마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무척 컸지만, 다니던 출판사도 그만두고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도 변곡점이 됐다고 말하며 근처 새집으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에서 보거나 어디서 자극을 받아 만든 음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먹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요리했다. [사진 히데코]

어린 시절부터 책에서 보거나 어디서 자극을 받아 만든 음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먹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요리했다. [사진 히데코]

 
그러고 나서 1층 인테리어 공사에 착수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예산도 없고, 세를 놓은 상태였기에 처음 하는 큰 공사였다. 당시 고3이던 아들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예민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엄마였다면 공사를 미뤘을 것이다. 그 사실을 무시한 건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마음먹은 일은 바로 밀어붙이던 나는 공사를 강행했다. 공사가 끝나곤 1층에서 요리 교실을 진행했고, 매달 남편 통장에 정해진 월세를 입금했다.
 
“이번 달이야말로 받아낼 거예요.” 1층 아틀리에에서 요리 교실을 열고 2년 정도 지나자 집주인이 틈날 때마다 독촉해왔다. 가족의 심기를 살필 필요도 없으니 매일 아침 지갑과 열쇠, 간단한 화장품, 휴대전화가 든 작은 토트백을 메고 의기양양하게 2층 살림집에서 1층 아틀리에로 출근하던 나는 월세는 계속해서 체납했다. 대학 졸업 후 기자나 번역가, 일본어 강사로 매달 급여 혹은 원고료를 받아온 탓인지 케이터링 요리 한 접시에 드는 비용 및 요리 교실을 여는 데 필요한 비용, 한 시간 인건비 등을 상세하게 계산하는 일이 매우 귀찮았다. 아니, 사실 대학을 나오고 나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는 상관없다. 그저 내 가끔 귀찮아진 성격과 원래 숫자에 약한 탓이다. 주먹구구식이었다.
 
다른 가정에서처럼 신혼 때는 가계용 통장 관리를 아내인 내가 맡았다. 3개월, 6개월, 1년. 시간이 지날수록 통장이 마이너스가 되어 가는 것을 발견한 뼛속까지 영업맨인 집주인 남편은 아내가 숫자 젬병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통장과 카드를 몰수했다.
 
나는 지금도 남편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고 있다. 그런 아내가 1층 세입자가 되었으니 분명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1층 아틀리에로 옮기고 나서 남편의 금전 감각으로 요리 교실을 운영했다면 그가 대신 내준 1층 전세 변제금은 지금쯤 남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월세를 밀려도 집주인, 아니 남편이 진짜 내쫓진 않을 거라고 마음 한구석으로 안심하고 있는 내가 바뀌어야 한다.
 
요리교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 내가 살아갈 날들의 보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요리교실이 바쁘다며 미뤄온 다양한 일을 포함해 나 자신까지 진지하게 다시금 바라보려 한다. [사진 히데코]

요리교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 내가 살아갈 날들의 보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요리교실이 바쁘다며 미뤄온 다양한 일을 포함해 나 자신까지 진지하게 다시금 바라보려 한다. [사진 히데코]

 
스물아홉에 만나 서른에 결혼했고 순식간에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둘 다 와인을 좋아해서 처음 만난 장소도 바였는데, 유모차를 밀면서도 당시 몇 군데밖에 없던 서울 시내 와인 숍을 돌아다녔다. 그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먹었던 스테이크 맛을 잊지 못해 남대문 시장에서 도구를 주문해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우리가 깨달은 것은 바로 가드닝. 어떤 분야에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든 최근 수년간은 정원사인 현철 씨의 조수로 정원을 손질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두 아들의 성장과 함께 달라져 온 우리 부부는 작년 연말까지는 예상도 못 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이 초래한 생활환경의 변화로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결혼하자마자 아들이 태어나서 부부가 대등하게, 진지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처음으로 공유하는 기분이 든다. 30년 동안 ‘회사’라는 세계에서 살아온 남편과 그와는 대조적인 길을 걸어온 아내가 앞으로의 인생 제2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요리 교실을 통해 만난 실로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배운 것이 내가 살아갈 날들의 보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느덧 한국에 산 지도 26년.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요리 교실을 휴강하고 많은 시간이 생겼다. 지금까지 요리 교실이 바쁘다며 미뤄온 다양한 일을 포함해 나 자신까지 진지하게 다시금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3월 중순, 집주인의 계좌에 체납하고 있던 1층 월세를 납입했다.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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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히데코 나카가와 히데코 키친 크리에이터 필진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 요리교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소통한 이야기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제가 주인공이 되어 '음식이 왜 삶인가'를 쓰려고 합니다. 요리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들부터 가족, 친구, 연희동 동네주민들, 식재료 거래처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저의 삶, 생각, 느낌을 문장 속에 녹여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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