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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벤처 캐피털은 ‘세상 변화를 읽는 눈’에 투자한다

중앙일보 2020.04.10 00:26 종합 26면 지면보기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자금이 거의 바닥났다. 투자 유치가 절실했다. 그러나 벤처 캐피털들은 이 회사를 눈에 두지 않았다. 하긴 인공지능(AI)·바이오·빅데이터·모빌리티·블록체인·게임처럼 소위 ‘핫(hot)’한 분야의 벤처가 아니었으니까. 사실 벤처란 표현이 약간은 어색한 업종이었다. 요식업, 그중에서도 피자였다.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도
‘소통 방식의 변화’를 읽어내 창업
성장하지 못하면 사업 바로 접는
‘얄미운 창업자’가 벤처 기본 자질

점점 궁지에 몰릴 때 한 벤처 캐피털이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캡스톤파트너스’다. 숨통이 트인 1인용 화덕 피자 프랜차이즈인 ‘고피자’는 그 뒤 무럭무럭 성장했다. 국내 가맹점은 캡스톤파트너스가 투자했던 2018년 8월 18개에서 지금 70여 개로 늘었고, 싱가포르·인도 등 해외로까지 진출했다. 캡스톤파트너스는 대체 무얼 보고 고피자에 투자했던 것일까. 송은강(56) 대표를 만나 캡스톤파트너스의 투자 세계에 대해 물어봤다. ‘기억에 남는 투자’부터 얘기를 풀어나갔다. 송 대표가 제일 처음 꼽은 것은 역시 고피자였다.
 
세상이 변한다고 오프라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잘 예견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가 오프라인 벤처에도 투자하는 이유다. 우상조 기자

세상이 변한다고 오프라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잘 예견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가 오프라인 벤처에도 투자하는 이유다. 우상조 기자

고피자에는 왜 투자하게 됐나.
“창업자가 당시 서른도 안 됐는데 훨씬 나이 많은 본부장들과 함께 있었다. 경험 많은 본부장들은 대형 프랜차이즈 출신이었다. 이들이 뭘 보고 같이 일하겠나. 나는 ‘창업자가 능력 있다’고 느꼈다.”
 
그 정도로 성공을 담보할 수 있나.
“창업자에게 세상의 변화를 읽는 눈이 있었다. 1인 세태에 맞춰 ‘1인용 피자’를 들고 나왔다. 실행력도 강했다. 1인용 피자를 간단하게 구워낼 수 있는 소형 화덕을 직접 개발했다. 작은 공간에서 1인용 피자를 패스트푸드처럼 바로 조리해 내는 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생각하는 게 오직 ‘어떻게 피자 맛을 올리면서 간편하게 만들까’ 뿐이다. 게다가 돈도 아주 절약해 쓰더라. 기본적으로 벤처캐피털은 돈을 충분히 주기 어렵다. 아껴 쓰는 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돈이 떨어졌을 때 캡스톤파트너스가 줬다고 고마워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투자했을 거다.”
 
외면받던 벤처에 투자한 사례가 또 있나.
“‘드라마 앤 컴퍼니’라는 업체가 있다. ‘리멤버’라는 명함관리 서비스 벤처다. 스마트폰이 막 퍼지던 2010년대 초반에 투자받겠다고 찾아왔다. 명함을 사람이 입력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창투사는 ‘말도 안 된다’며 거부했다더라. 그런데 논리가 재미있었다. ‘대한민국에 명함 쓰는 화이트 칼라가 최대 1500만명. 한장 입력에 100원이 들어도 15억원. 그다음엔 별로 돈 들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명함 인식 기술에 오류가 많아 오히려 사람이 입력하겠다는 데 신뢰가 갔다. 되겠다 싶어 투자했다.(※2017년 네이버가 드라마&컴퍼니를 인수해 캡스톤파트너스는 20배 투자수익을 냈다.)”
 
명함 입력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텐데.
“창업자가 애초부터 한국의 ‘링크트 인(인맥·경력 관리 소셜네트워크)’을 꿈꿨다. 명함은 엄청난 데이터다.”
 
마켓 컬리와 지역 중고거래 앱인 ‘당근마켓’에도 투자했다.
“마켓 컬리는 이제 워낙 유명하고…. 당근마켓은 창업자인 김재현 대표를 전부터 알았다. ‘쿠폰모아’란 서비스를 할 때 투자하려 했는데 늦었다. 그러다 제삼자가 쿠폰모아를 인수했고, 김 대표는 당근마켓을 차렸다. 그 전에 투자 못한 한을 당근마켓으로 풀었다. 그래도 속 시원하지는 않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투자하지 못했다. 당근마켓에 돈을 대겠다는 경쟁자가 많았다. 소프트뱅크도 그중에 하나였다.”
 
투자자를 고를 정도라니, 당근마켓은 몸값이 높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당근마켓 창업자처럼 스타트업을 차린 뒤 엑시트(상장이나 M&A 등을 통해 투자를 회수하는 것)까지 거쳐 본 친구들을 ‘연쇄창업자(serial enterpreneur)’라 부른다. 벤처 캐피털이 제일 선호하는 대상이다.”
 
캡스톤이 만난 기업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을 했다고 하던데.
“회사가 의미 있는 성장을 하면 계속 투자한다는 뜻이다. 성장이 꼭 매출과 이익일 필요는 없다. 사용자와 이용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성장이다. 당근마켓(가입자 600만 명)이 그렇다. 매출·이익이 없는데도 회사 가치가 3000억원 정도라고 인정받고 있다.”
 
안 될 것 같을 때 회사를 접게 하는 것도 책임지는 태도 아닐까.
“그렇다. 성장이 없으면 접어야 한다. 한데 이상하게도 국내 창업자들은 ‘사업이란 오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칼을 한번 뽑았으면…’이다. 다 까먹고 마지막엔 부모·친구·친척 돈을 끌어들인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결국엔 주변 볼 면목이 없으니 숨어 산다. 재기할 기회가 없다. 그래선 안 된다. ‘얄미운 창업자’가 돼야 한다.”
 
어떤 게 얄미운 창업자인가.
“‘아니다’ 생각하면 무리하지 않고 접는 창업자다. (※이러면 투자한 벤처 캐피털이 손해를 본다) 이런 친구들이 나중에 밥 사달라고 찾아와 새 사업 얘기를 하면 솔직히 나도 기분은 좋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해야 한다.”
 
오버하지 않는 것, 얄미운 창업자가 되는 것이 벤처인의 덕목이란 말인가.
“덕목이라기보다 기본 자질이다.”
 
대학 연구실 창업에도 투자를 많이 했다.
“흔히 ‘벤처 캐피털은 기술에 관심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게 아니다. 변화를 읽는 능력을 본다. 페이스북은 ‘소통 방식의 변화’를 읽고 창업한 회사다. 대학생이던 마크 저커버그의 능력이었다. 먹고, 놀고, 옷 입고, 물건을 사고, 소통하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는지 제일 잘 파악해내는 사람이 젊은 친구들이다. 그래서 대학생 창업이 대단히 중요하다. 또 하나, 변화의 큰 원동력이 인공지능이다. 거기에 제일 익숙한 사람들이 대학에 있다. 실험실 석·박사들이다. 컴퓨터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기본으로 공부한 친구들이다. 대학에서의 창업이 보물 창고다.”
 
창업보다 취업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미국에서도 구글에 들어가면 동네에서 자랑한다. 하지만 바로 입사하기는 힘들다. 가만히 보면 창업했다가 구글이 그 회사를 인수하는 바람에 구글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그런 때가 됐다. 젊은이들이 직장으로 카카오·네이버·쿠팡을 선호한다고 한다. 입사 경쟁이 치열할 거다. ‘창업이 카카오·네이버에 입사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줬으면 한다.”
  
‘뉴 칼라(new collar)’의 자격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사람(창업자)이 투자의 중요한 요건”이라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창업자가 뉴 칼라(new collar)일 것’이다. 뉴 칼라는 원래 지니 로메티 IBM 회장이 꺼내 든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술직군’이다. 블루 칼라도, 화이트 칼라도 아니라는 뜻에서 ‘뉴 칼라’라고 했다.
 
송은강 대표는 뉴 칼라를 이와 다른 뜻으로 사용했다. 그는 ‘뉴 칼라의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기술이 바꿀 미래를 내다보는가 ▶디지털 리터러시가 있는가 ▶세상을 바꿀 의지가 있는가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는가 ▶손잡고 일하는 법(협업)을 아는가 등이다. 이 5가지 조건은 국내 서적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에 나온 내용이다.  『새로운 …』은 캡스톤파트너스가 투자한 지식 콘텐츠 벤처 ‘퍼블리’가 펴냈다.
 
5가지 조건 가운데 ‘디지털 리터러시’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문득 송 대표가 ‘기억에 남는 투자’로 꼽은 피자 프랜차이즈 ‘고피자’는 디지털 리터러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송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피자를 만들 때 사람 손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게 반죽(도우)이다. 고피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 과정을 자동화하려 한다. 사람이 하는 반죽 과정을 인공지능이 관찰하고 학습해 로봇 손이 도우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캡스톤파트너스와 송은강 대표
창업한 지 3년 이내인 초기 벤처에 주로 투자한다. 총 투자운용자산은 2780억원이다. 송 대표는 삼성그룹과 MVP창투를 거쳐 2008년 캡스톤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학사, KAIST 전산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공학계 석학들의 모임인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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