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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25달러 맥주 투어로 맛본 완벽한 뉴욕의 하루

중앙일보 2020.04.09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40)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어느 시인은 길섶의 풀꽃을 보며 이렇게 읊조렸다. 가까이 가서 찬찬히 살펴보면 하찮은 것도 예쁘게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시의 감성을 미국 최대의 도시이자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라는 뉴욕에서는 끌어올리기 어려웠다. 적어도 내게는….
 
타임스 스퀘어. [사진 황지혜]

타임스 스퀘어. [사진 황지혜]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반짝반짝 빛나는 타임스 스퀘어는 가까이 들여다보니 관광객들로 가득해 걸음을 내딛기도 어려운 혼잡한 거리였다. 영화 속 커플처럼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낭만적인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물가를 감수해야 했다. CF 속에서는 뉴욕 택시에 타면 우연히 이상형을 발견하던데, 실제 뉴욕 택시는 잡기도 어렵고 교통 체증 탓에 목적지에 다다르기는 더 어렵다. 맨해튼에 렌터카를 끌고 나간 날은 당장 차를 버리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브루클린의 사진 촬영 포인트와 아이스크림 맛집에도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어렵게 진입한 인기 레스토랑에서는 한 조각의 친절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하이라인의 벤치와 센트럴파크의 안쪽 깊은 곳이 ‘이것이 뉴욕의 낭만인가’라는 느낌을 살짝이나마 줬지만… 전반적으로 내게 뉴욕은 ‘멀리 봤을 때 멋진 곳’이었다. 
 
뉴욕 여행의 마지막 날. 조금은 지친 몸과 마음으로 미리 신청해 둔 뉴욕 맥주 투어에 나섰다. 개별 여행, 자유 여행이 대세라지만 해외에서의 맥주 여행은 패키지도 선택해볼 만하다. 전문가인 가이드와 함께 다니면서 양조장과 맥주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고 양조장 관계자들을 만나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혼자 양조장과 펍을 찾아다니기는 쉽지가 않고 맥주를 마신 후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을 때가 많다.
 
또 투어에 참여한 여러 사람과 함께 다양한 맥주를 나눠 마셔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여러 가지 맥주를 혼자 사 먹는 것보다 간과 지갑에 미안함이 덜하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예약한 맥주 투어지만 결과적으로 이 투어를 통해 내 기억 속에는 뉴욕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남았다.
 
참가한 패키지 투어의 이름은 ‘뉴욕 비어 앤드 양조장 투어(The New York Beer and Brewery Tour)’ 중 ‘더 시그니처 투어(The Signature Tour)’였다. 1인당 125달러로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투어다. 하지만 4.5시간 동안 4곳의 장소를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고 브루클린과 퀸즈 관광까지 덤으로 할 수 있다니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립어드바이저 평가도 좋았고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으로 투어를 사전에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참여해보니 양조장 양조 설비 투어, 뉴욕 맥주 역사 기행, 푸드 페어링 등으로 프로그램이 조화롭게 구성됐다. 특히 맥덕(맥주덕후)인 가이드 닉의 설명이 참 찰졌다.
 
맨해튼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파는 단 두 곳 중 한 곳, 비레리아 양조장.

맨해튼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파는 단 두 곳 중 한 곳, 비레리아 양조장.

 
투어는 맨해튼에 있는 비레리아 양조장(Birreria Brewery)에서 시작됐다. 비레리아는 임대료가 비싸 양조장을 운영하기 어려운 맨해튼에서 직접 맥주를 만드는 단 두 곳의 양조장 중 하나다. 이탈리아 음식과 이탈리아 식재료들을 파는 Eataly라는 곳의 루프탑에 자리 잡고 있다. 도그피쉬헤드 양조장(Dogfish Head Brewery) 출신 양조사가 맥주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맥주 양조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시음이 시작됐다. 더블IPA 한잔과 사워 맥주 한잔이 제공됐다. 공복에 도수가 높은(8% 이상) 더블IPA를 마시니 알딸딸해졌다.
 
루프탑 분위기에 비해 맥주 맛이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개성이 강한 맥주라기보다는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만든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가이드로부터 뉴욕 맥주의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뉴욕에서 맥주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정치가이자 양조사였고 뉴욕 양키스의 오너이기도 했던 제이콥 루퍼트(Jacob Ruppert)는 미국 메이저리그 운영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구단 운영 등을 위한 자금을 맥주를 팔아서 마련했다고 한다.
 
뉴욕 거리에 처음 보도석(pavement)이 깔린 것도 맥주 덕분이었다. 애초 뉴욕에서는 롱아일랜드에서 물을 가져다가 양조를 했다. 물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포장되지 않은 길에 물이 새면서 길은 온통 진흙탕이 됐다. 그래서 강가에서 돌을 가져와 길에 깔게 됐다고 한다. 또 현재는 미국 전체 홉 생산량의 80%를 북서부 지역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원래는 뉴욕이 No.1 홉 산지였다고 한다. 뉴욕은 물이 좋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돗물에도 미네랄 함량이 높은 거로 유명해서 맥주 만들기에 좋다. 뉴욕이 피자, 베이글로 유명한 것도 다 물이 좋아서 그렇다는 닉의 설명이었다.
 
브루클린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는 한국에도 수입된다.

브루클린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는 한국에도 수입된다.

 
맨해튼에서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에 도착했다. 브루클린 양조장(Brooklyn Brewery)은 수제맥주 양조장치고 규모가 크고 한국에도 맥주가 수입되는 익숙한 양조장이다. 브루클린 라거, 브루클린 이스트 IPA 등이 유명하다.
 
여기서는 외부로 유통하지 않고 양조장에서 시험적으로 양조하는 맥주를 골라 마셨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부부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목적지는 브루클린의 내로라하는 펍인 스파이턴 다이블(Spuyten Duyvil)이었다. 스파이턴 다이블은 뉴욕 인근에 있는 하천 이름으로 이 펍은 구하기 어려운 맥주를 다양하게 구비해놓고 있어서 맥덕들의 아지트로 통한다. 간판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다들 잘 찾아온다.
 
스파이턴 다이블. 구하기 어려운 맥주가 구비되어 있어 맥주애호가들에게 인기 명소다.

스파이턴 다이블. 구하기 어려운 맥주가 구비되어 있어 맥주애호가들에게 인기 명소다.

 
들어가 보니 역시나 맥주 메뉴가 화려하다. 미국 동부 맥주들은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는 비어 푸드 페어링이 진행됐다. 5종의 맥주와 5종의 안주를 매치해 먹는 것. 어떤 원리로 맥주와 음식이 어울리는지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우린 취했다. 배움은 더는 필요 없다. 제공된 맥주를 다 먹고 빨리 추가로 맥주를 주문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꿀떡꿀떡.
 
퀸즈로 이동해 마지막으로 들른 장소는 싱글컷 양조장(Singlecut Brewery). 양조장 관계자가 직접 양조장과 맥주에 관해 설명을 해줬다. 스타일별 특색이 잘 드러나는 맥주들이 인상적이었다.
 
투어는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끝이 났다. 프로그램이 탄탄해서 전혀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방문한 포인트도 맥주의 품질이나 분위기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만난 북창동 순두부가 깔끔한 마무리를 해줬다. 이것이 바로 완벽한 뉴욕의 하루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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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혜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필진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맥주는 짝으로 쌓아놓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맥주 덕후.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시겠다는 사심으로 맥주 콘텐츠 기업 비플랫(Beplat)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 스타일, 한국의 수제맥주,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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