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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보수집권플랜’은 있는가

중앙일보 2020.04.09 00:3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OOO 집권 시기가 우리에게 낙담과 탄식, 분노의 계절만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군요. 오히려 우리가 왜 권력을 잃었는가를 성찰해 보고 재집권을 준비할 시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진보는 10년 전에 ‘집권플랜’ 세워
비전·정책 없이 ‘심판론’만 외치는
미래통합당은 중간층 흡수 어려워

“아주 소중한 시기죠. 정권을 빼앗긴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에 분개하면서 ‘저 나쁜 놈들!’이라고 울분을 토하는 데 그쳐서는 의미가 없어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세네카가 한 말이 있죠.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일어나는 것이다’.”
 
권토중래를 꿈꾸는 미래통합당 정치인들 대화가 아니다. 오마이뉴스를 만든 오연호씨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주고받은 문답이다. 때는 2010년 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요즘처럼 새 정권 중반기였다. 맨 앞의 OOO은 이명박이다. 두 사람 대화는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금의 집권 세력에겐 이처럼 다 계획이 있었다. 책에서 조 전 장관은 2년 뒤인 2012년 대선엔 기대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2017년 대선을 바라봤다. ‘플랜’은 ‘일자리·주거·교육·청년·남북관계·검찰에 대한 문제의식을 널리 확산시키고, 진보 세력의 대안을 제시해 지지층을 넓혀 나간다’로 요약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탄생이 이런 계획 덕분인지, 아니면 보수 세력 자중지란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우발적 사태 때문인지를 가리기는 어렵다. 세네카 말처럼 준비·기회·행운이 뒤섞여 있었다.
 
다시 새 정권 중반기를 맞았다. 전 집권 세력은 다음 주에 실시되는 총선을 교두보 삼아 정권을 탈환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참작해도 그들 장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선거는 한 주가량 남았고,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고 한다.
 
『진보집권플랜』의 핵심은 ‘헬 조선’ 부각이었다. 일자리·주거·교육 문제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의 실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비판의 외피는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로 포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은 이 플랜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헬 조선’ 극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탈출이 더 요원해졌다. 일자리가 줄고, 집값이 뛰고, 사교육 의존성이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자살률·출산율은 악화했다. 2014년부터 감소하던 자살률은 2017년에 최저점(10만 명당 24.3명)을 찍고 2018년에 다시 상승세(10만 명당 26.6명)로 돌아섰다. 출산율은 최저 기록을 경신 중이다. ‘공정과 정의’라는 구호도 조국 사태로 허구성이 드러나며 퇴색했다.
 
그런데도 제1 야당의 지지율은 정체다. 정권에 대한 실망이 그들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 통상 선거는 중간층(스윙 보터)이 좌우한다. 확고한 ‘집토끼’들은 찍던 대로 찍고, 끝까지 고심하는 10∼20% 유권자의 표를 어느 쪽이 더 가져가느냐에 결국 승부가 난다. 그들은 한쪽이 미워도 쉽사리 반대쪽으로 몰려가지 않는다. 제3 세력 선택이나 기권도 생각한다.
 
미래통합당은 ‘정권 심판’을 외치며 표를 달라고 한다. 일자리·주거·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만 구체성이 없다. 뚜렷한 방향이 없으니 공약이 벙벙하고, 공천이 우왕좌왕이다. 동네에서 잘나가던 식당에 손님이 줄었다고 해서 옆 식당에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다.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해 메뉴를 개발하고 음식 맛에 정성을 들이는 가게가 방황하는 발길들을 끌어당긴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미래통합당은 치열하게 준비를 하고 있느냐고, 정말 계획이 있기는 한 것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조 전 장관은 그 책에서 “미래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언제나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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