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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좀비 정치 퇴출의 날

중앙일보 2020.04.09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2019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봤다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좀비가 된 왕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왕의 후광을 업고 세도를 누려온 외척 조학주(영의정)는 권력에 대한 탐욕을 놓지 못하고 죽은 왕을 되살리려 생사초를 먹인다. 죽지 못한 왕은 ‘해가 뜨면 잠이 들고, 해가 지면 깨어나 사람의 피와 살을 탐하는 끔찍한 역병’에 걸려 좀비가 된다.
 

‘코로나 이후’ 새 도약 하려면
진영 대결, 탐욕정치 벗어나야
주권자인 유권자 판단에 달려

제작자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조선판 좀비 영화는 ‘좀비 정치’의 추악한 구석을 꽤 잘 묘사하고 있다. 권력 그 자체를 탐해 국정을 농단하는 게 좀비 정치다. 조학주는 죽은 왕을 좀비로 만들어 권력을 도둑질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해내지도, 전국으로 번져가는 역병을 다스리지도 못한다. 왕위 승계 1순위인 세자 제거에만 혈안이 될 뿐이다.
 
정치가 권력에 대한 탐욕과 맹목적 집착에 빠질 때 그것은 폭력에 다름 아니며,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꼭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21대 총선이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 속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거’가 될 판이다. 우선 투표용지부터 좀 기이하다. 기호 1, 2번이 빠진채 3번부터 시작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라니. ‘한국판 좀비 정치’가 낳은 기형적 권력다툼의 산물이다. 35개 정당명이 적힌 비례 투표용지는 길이가 48.1㎝에 달한다고 한다.
 
어쩌다 이런 괴상한 투표용지가 만들어졌는지 되돌아보는 것은 이 시점에서 중요하다. 퇴출시켜야 할 좀비 정치의 단초를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곗바늘을 되돌려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선거법·공수처법 공방으로 돌아가보자. 공정과 정의로 치장됐던 가림막을 거둬내자 위선과 꼼수, 추악한 권력 다툼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사표(死票)를 막고 다당제 정치를 열겠다고 선전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사기극’으로 끝났다. 미래통합당에 이어 민주당마저 위성 비례정당 창당에 뛰어들면서 군소 정당들의 입지는 더 쪼그라들게 됐으니 말이다. 이럴 바에야 비례대표제를 없애자는 말이 나올 정도니, 개악도 이런 개악이 없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뒷거래 논란이 무성했던 공수처법의 미스테리도 벗겨지고 있다. 나라를 두동강 냈던 조국(전 법무장관) 사태에도 대통령은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없었다. 드러내놓고 조국 무죄를 외치는 위성 정당(열린민주당)에 여권 핵심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는 것과는 무관한 것일까. 이 와중에 살인 전과 등 중범죄를 저지른 후보까지 공천장을 준 어떤 정당은 8억원이 넘는 선거보조금을 따내 누더기 선거법의 ‘과실’을 챙겼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러려고 몸싸움에 날치기까지 하면서 선거법을 밀어부쳤단 말인가.
 
좀비 정치는 권력이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잠시 위임받은 한시적 권한이란 걸 잊을 때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햇볕이 내리쬐는 너른 광장이 아니라 달빛 음습한 밀실을 선호한다. 민생이나 국익이 아니라 이분법적 진영논리와 맹목적인 당파성을 강요한다. 권력 싸움엔 기세를 올리다가도 민생이나 눈앞의 현실 문제를 푸는 데는 무력하다.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니, 대안은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되풀이한다. 퇴출돼야 할 좀비적 행태다.
 
전 지구적인 코로나 사태로 세계는 문명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더라도 세계는 이전과 절대 같아지지 않을 것”(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란 전망이 아니더라도, 감염병이 인류 역사의 물길을 바꾼 사례를 찾는건 어렵지 않다. 유럽 인구 3분의 1을 절명케 한 흑사병은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던 중세에 종지부를 찍고 근대의 문을 여는 단초가 됐다. 채무국이던 미국이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패권국으로 올라선 계기를 스페인 독감의 전파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가 바꿀 미래 현상으로 원격의료, 원격근무, 온라인 교육, 감시·추적의 일상화와 함께 반세계화의 확산등을 꼽았다. 한국은 세계화의 흐름을 낚아채 자유무역의 수혜를 받아 성장했다. 코로나가 바꿀 문명의 대전환이란 조류에 올라타야 새로운 도약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진영 대결정치와 탐욕의 정치로는 안될 일이다.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는 퇴행적 좀비 정치가 계속된다면 오히려 생존이 위협받게 될지도 모른다. 권력을 위임했던 주권자인 유권자가 좀비 정치 퇴출에 나서야 한다. 다시 ‘유권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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